(법률에세이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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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는 '개인의 안전'과 '공익'을 위협한다.
어디까지가 법이 보호해야하는 '개인의 안전'이냐. 무엇이 '공익'인가. 조금 더 들어갈 수도 있겠다. 무엇이 범죄이냐는 법철학의 논쟁까지도 넓힐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선 그러지 말자. 그런건 학자들에게 맡겨두자. 지금은 범죄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만 이야기하자.
범죄는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해야 한다.
정말 매력적인 문장이다. 감사건, 징계건, 형사사건이건 모두 '예방'을 이야기하고, 한발 짝 더 나가 '선제적' 예방을 말한다. 예방한다는 말은 원인을 없앤다는 뜻이다. 병균을 알아야 백신을 만들 수 있다. 학자들은 범죄의 원인을 연구했다. 원인을 '범죄자'에게서 찾는 사람도 있었고, '환경'에서 찾는 사람도 있었다.
범죄자에게서 범죄원인을 찾는 것은 직관적이다. 훔쳤으므로, 쫓아가서 잡았고, 때리서 가두었다. 때리면 우선 속이 시원하고, 맞고 갇히는 게 무서워 다시는 범죄를 하지 않을 것이고, 이를 본 다른 사람들도 무서워서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후처벌이다. 사후처벌에는 범죄자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명쾌한 논리는 수 천년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범죄자'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범죄자의 생각은 그들의 신체구조의 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범죄는 신체의 작용에 불과하므로, 그들은 잘못이 없다. 자유의지가 없으므로 그들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 치료대상이다. 범죄신체구조를 연구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고, 신체의 치료로 교화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론이 19세기 미국에서 유행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오늘날 보호관찰, 가석방, 상담 및 치료, 소년범 구분처리 등에 바탕이 되었다.
이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탈리아 의사이자 범죄학자인 롬브로조(Cesare Lombroso, 1835-1909)의 '골상학'이다.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면 '범죄 관상학' 정도가 되겠다. 골상학은 인간의 범죄성은 선천적으로 유전되며, 그 특성은 인간의 두개골 등 머리 형태에 나타난다고 주장이다.
골상학과 같이 우생학을 기반으로 범죄원인을 규명하는 사람은 선민의식이 깔려 있다. 범죄형 인간은 따로 있는데, 자신은 범죄형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한 자신이 범죄형 인간을 인간적인 측은함으로 치료하겠다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아마도 그들은 피해자들에게도 오죽 했으면 범죄를 당하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피해자의 신체적 특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피해자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범죄 관상학'은 무엇이 잘못인가. 범죄를 질병처럼 생각했다는 것이다.
범죄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살다보니 일어난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어쩌다 경찰에 쫓기는, 간수에 의해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혹은 죄는 저질렀지만 쫓기지 않고, 잡히지 않은 자신에게 안도할 뿐이다.
삶에 원인이 있던가. 범죄의 원인을 안다는 것은 삶의 원인을 안다는 것과 같다. 삶의 원인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삶에 천재가 된 것이다. 삶의 천재가 되어, 삶의 원인과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서 산단 말인가.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범죄에 대한 멋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