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사는 법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오영욱)(1/2)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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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 가게 되면 하나라도 더 보려했다. 낯선 모든 것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나의 감각은 모두 더듬이가 되어 모든 걸 감지해냈다. 뭐 새로운 것은 없나, 똑같은 것은 없나 두리번거렸다.


새로운 더듬이로 보면, 공항, 버스, 도로, 건물, 다리, 지하철, 기차역, 보도블럭, 나무, 바람, 하늘까지 모든 게 다시 보였다. 그네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겠지. 그들은 평생을 살아도 찬찬히, 꼼꼼히 보지 못하는 것을 일주일 여행하는 나는, 일주일 여행하기 때문에 더욱 예민한 더듬이로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애틋하다. 다시 올 수 없을 거라는, 마주치기 힘든 순간이라는 애틋함이 있다.


건축가 오영욱은 귀국하면서 서울을 여행하듯 살기로 했다. 나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내가 사는 도시에 여행을 온 것처럼 살려고 한다. 다시 올 수 없을 거라는, 마주치기 힘든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살려고 한다. 세종에 여행 온 것처럼, 서울에 여행 온 것처럼 살려고 한다.


오늘 점심 벤치에서 책을 읽었다. 바람이 부니 나뭇잎 소리가 났다. 벤치 앞에 투둑 나뭇잎이 떨어졌다. 노란 단풍이 살짝 물들어 있었다. 여행 온 듯 벤치를, 보도블록을, 미끄럼틀을, 나무를, 하늘을 둘러봤다. 마주치기 힘든 순간 같았다. 아련한 회상으로 기억될 순간이었다.


가끔 지방 소도시에 여행을 간다. 합천, 옥천, 화순, 진안, 부안 이런 곳에 문득 간다. 다시 올 기약조차 힘든 곳에 간다. 그런곳에 가면 도착하는 순간부터 애틋해진다.


연인은 왜 애틋한가. 마음을 다 알지 못해 언제나 낯선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언제고 헤어질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노부부는 왜 애틋한가. 죽음은 어느순간 실현되므로, 이 순간이 다시 올 수 없을 거라는 걸 서로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건축가 오영욱은 여행하듯 서울에 산다고 했다.

나는 여행하듯 세종에 산다.


0b24f8b0c7300.jpg <우각호>, 작은 변화가 다른 변화를 야기하고, 변화의 누적이 만들어 낸 엄청난 결과. 땅의 단단함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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