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전 산책, 조국)(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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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전공서적 중 가장 오래된 책은 97년판 형사정책(최재천 변호사 저)이다. 수험서도 이론서도 하나둘 모두 버려졌는데 '형사정책'만 살아남았다. 최재천 변호사가 사법시험 준비하면서 모은 자료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 수험서이면서도 내용이 깊다.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이유도 이를 대체할만한 책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보았었다.
'법고전 산책'에서 Beccaria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바로 형사정책이 떠올라 꺼내보았다. 롬로조, 서덜랜드, 페리, 젤린, 가로팔로, 뒤르깽 등 반가운 이름을 다시 보았다. Beccaria '범죄와 형벌'은 형사정책에 있어 고전학파의 출발로 본다. '법고전 산책'을 통해 Beccaria의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Beccaria는 법은 권력자의 지배도구일뿐이며, 가혹한 형벌은 정의롭지도 않고 형벌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무려 1764년에 말이다.
중세나 지금이나 권력자는 왜 가혹하게 더 가혹하게 처벌할까. 가혹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범죄는 개인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으로 나뉜다. 개인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이 종합적으로 작동결과가 범죄다. 많은 학자들이 이론연구부터 사회연구까지 실시했지만 기여비율을 알기 어려웠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권력자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 책임이 있으므로 범죄의 환경적 원인을 찾아내고 줄여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범죄는 개인과 국가에 모두의 책임이다.
비위가 발생하면 권력자는 '엄벌하라'고 말한다. 아주 강력한 공격법이면서 단단한 방어법이다. 사건해결의 틀은 그대로 놓고, 처벌 수위만 높이면 된다. '엄벌하라'는 말은 기존의 정책적 결단은 옳으며, 권력자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선언이 깔려 있다. 오히려 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키지 못할 법을 만들거나, 유혹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은 권력자일텐데도 '엄벌하라'는 한 마디에 책임에서 벗어나 지지를 강화하는 기회로 만든다.
권력자는 비위는 순전히 개인책임이므로 모든 비난은 개인에게 돌린다. 그동안 선처해서 사건이 발생했으니, 권력자의 여리고 약한 마음을 고쳐잡겠다고 자신의 선함을 은근히 비친다. 위반자는 더 세게 처벌받을까봐 가만히 있을 것이고, 여론은 잘했다고 박수를 칠 것이다. 보검이 있다면 어떠한 전투에서도 이길 수 있듯이, '엄벌하라'는 방책은 언제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기묘한 방책이다.
처벌규정과 처벌수위는 점점 강해지고, 사람들은 다시 점점 무뎌진다. '나는 위반하지 않을거야', '나는 걸리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범죄자에게 야유하고, 권력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느순간 속박의 틀이 조여와 위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사람들은 그때서야 깨닫는다. '엄벌하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하고 위험한 말인지 알게 된다.
권력자들은 범죄의 환경을 없애지 못하고, 빌미를 제공했음에도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제3자인양 이야기한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