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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n 29. 2023

미셸 슈나이더의 놀라운 문장력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1/2)

https://blog.naver.com/pyowa/223141416028


먹방이나 맛집 탐방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지 않는다. '화면과 소리'로 '맛과 향'을 전달한다는 게 어색하다. 실감이 되지 않는다. 맛집 프로그램이 많은 걸 보면 같은 프로그램을 봐도 많은 사람들은 실감나게 보는 모양이다. 결국 나의 문제다.


나는 글렌 굴드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피아노를 배워본 적도 없고, 클래식 피아노를 잘 알지도 못한다. 작가인 미셸 슈나이더가 글렌 굴드의 모습이나, 연주회장, 피아노의 음향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있으면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모습이 보이고, 손끝에서 무감각하게 퍼져나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들린다. 연주회를 보고 난 후 책을 읽은 것만 같다. 놀랍다.


글렌굴드는 많은 기행을 가진 괴짜였다. 구부정한 어깨, 건반에 머리를 박고 하는 타건, 중얼중얼하는 입, 수 십년은 되어 보이는 가지고 다니는 의자. 모두 다 놀랍다. 그에게 전통, 관례, 타인의 시선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피아노로 침묵을 어떻게 가를지, 공간을 어떻게 떨리게 할 지를 생각했다.


빛은 스스로 실체가 있는 것일까. 어둠이 실체가 있고, 빛은 어둠의 틈이 아닐까. 음악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일까. 소리는 침묵 사이를 경계에 불과한 것 아닐까. 음악은 침묵의 연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연주회에 가면 현란한 핑거링이 함께하는 포르테보다, 침묵위에 차분히 끌어내는 피아니시모에서 훨씬 집중하게 된다. 침묵 위에서이므로 연주자는 음색에 더욱 집중한다. 피아니시모는 안정적으로 가늘게 이어지다 언제 사라지는지 모르게 사라진다. 그렇더라도 음악은 계속된다. 연주자는 침묵을 이어 연주하고 침묵이 충분히 연주되었을 때 연주를 마친다. 그제서야 우리는 박수를 친다. 침묵에 대비되어 박수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초등학교 5학년때 교실에서 피아노 소리를 처음 들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자 소리가 났다. '땡-' 소리가 났다. 사람이 만든 악기에서 이런 소리가 난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땡- 소리가 함께 교실의 시끄러웠던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이 피아노를 쳤는데 개별 소리가 뭉개지지 않고, 각자 울리면서도 서로 어울렸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글렌 굴드는 피아노와의 경계는 없애려 노력했다. 피아노와 하나가 되려했다. 소리와 침묵을 섞어가며, 곡의 주제를 해석했다. 거기엔 깊은 고독과 관행을 거부는 강한 의지가 깔려 있다.


글렌 굴드도 놀랍지만, 미셸 슈나이더의 문장력이 더 놀랍다.

(10년쯤 전에 '팟캐스트 문학동네 채널1'에서 신형철 평론가가 추천해서 산 책인데, 이제사 읽는다.)






https://youtu.be/QakSI9BQ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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