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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l 03. 2023

"목욕시간은 1분이다. 실시!"

https://blog.naver.com/pyowa/223144273573


93년 2월이었다. 30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훈련병이 되어 있었다. 마음은 굳게 먹었지만, 훈련소 정문을 지나니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수많은 훈련병 중의 한 명이었다. 훈련할 때도, 잘 때도 너무나 추웠다. 입을 것도, 잘 곳도 추위를 막을 수 있을 것이 아니었다. 먹을 것은 언제나 모자랐다. 씻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조교들은 밥을 빨리 먹으라 외치며 의자를 발로 찼다. 반찬은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그때 알게 된 게 있는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만 있으면 먹을 수 없다. 허겁지겁 씹어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소금기 반찬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소금이라도 있어야 한다. 밥에 소금을 뿌려 먹으면 짧은 시간에 많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100명이 넘는 훈련병이 귀가 까맣게 되었다. 우리는 귀도 트는구나하며 생각했었다. 나중에 전 중대원이 귀 동상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교들이 혼났는지 부랴부랴 귀마개를 사주었다. 조교들의 발길질에 퍽퍽 쓰러지며 훈련을 받았으니 조교에게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할 수 없었다.


씻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2월의 경기북부는 너무도 추웠다. 따뜻한 물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야외 세면장의 얼기 직전의 차가운 물에 좌욕을 했다. 그때 '좌욕'이란 단어도 처음 알았다. 6주동안 샤워는 하지 않았고, 목욕을 2번했다. 난 그때 1분에도 목욕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커다란 탕 안에는 조교들 너다섯 명이 들어가 있었고, 100명의 훈련병은 목욕바가지 하나씩 들고 탕 주위를 에워싸서 대기하고 있었다. '실시'란 명령과 함께 1분안에 씻고 나와야 한다. 별도의 샤워꼭지나 수도꼭지는 없었다. 바가지로 탕 속에 있는 물을 퍼서 씻어야 했다. 100개의 목욕바가지가 동시에 물을 푸니 바가지 들어갈 공간도 없었고, 따뜻한 물은 금새 사라졌다. 한 두 바가지라도 몸통만 씻으면 1분안에 씻을 수 있다. 내쫓긴 100명은 4열 종대로 줄을 맞추어 군가를 부르며 막사로 돌아왔다. 다들 야외 세면장으로 가 얼기 직전의 물로 몸의 나머지 부분인 머리, 얼굴, 손, 발을 씻었다.


조금 전에 구해줘 홈즈에 '군대 세면장' 이야기가 나왔다. 30년전 벌거벗은 채 목욕바가지 하나를 들고 조교의 구령을 기다리는 내가 떠올랐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만들어낸 이야기같지만,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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