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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l 11. 2023

배구심판이 일하는 중이듯, 재판에서 판사도 일하는 중.

(이기는 민사재판의 비밀, 노인수)(2/3)

https://blog.naver.com/pyowa/223152452830


민사재판은 원고와 피고간의 다툼이다. 모두 지켜야할 재산과 권리가 있다. 원고와 피고에게 재판은 삶이고, 정의의 문제다.



판사는 어떠한가. 판사에게 재판은 일이다. 법정에서 일어난 모든 것은 일의 문제다. 판사는 배구코트의 심판처럼 '공격하세요', '방어하세요'를 외치며 경기를 진행해나간다. 경기가 끝나면 규칙에 따라 in and out을 판단하고, 점수를 확정하고, 승패를 결정한다. 거기에 뭐 대단한 게 없다. 대단한 걸 기대했다면 그대의 잘못이다. 심판이 정의감에 불타서는 안 된다. 올림픽 배구결승전의 심판도 '일'을 하는 중이듯, 재판에서 판사도 일하는 중이다.



일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이 빠르고 쉽게 끝나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쓸데 없는 것에 꽂혀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 사람이다. 남탓하며 되지도 않을 일을 하는 사람이다. 최악의 업무파트너는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 아니던가. 일할 때 성과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뒤탈이 없어야 한다. 깨지지 않는 보고서가 중요하듯이, 파기되지 않는 판결이 중요하다. 판사는 일하는 중이다. 거기에 무슨 흥미진진이 있겠는가. 



그러니 변호사는 판사가 판결문 쓰기 좋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승소판결문을 쓰기 쉽게 주장과 자료를 제출하고, 패소되지 않도록 그 방향의 판결문을 쓰기 어렵게 어렵게 변론을 해나가야 한다. 판사는 가치중립적인가. 물론 재판 시작전에는 중립이다. 재판이 한참 진행중인데 가치중립적인 판사는 없다. 중립이라는 얘기는 심증이 없다는 얘기고, 심증이 없다는 얘기는 그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판사가 중립적이지 않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지 말자. 판사의 심증을 어떻게 끌어올 것인가를 고민하자. 처음부터 끌어온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겠다. 기울어진 마음을 되돌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마음에도 사랑에도 관성이 있으니까. 하물며 일하는 중인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판사의 머릿속에는 판결문만이 존재한다. 판결문에 써질만한 것인가 아닌가를 생각할 뿐이다. 판결문에도 공판조서에 쓸 수 없는 주장과 자료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허망한 일이다.



어떤 작전계획도 적과 만나면 쓸모가 없어진다.(웨스트포인트 톰 콜디츠 대령, '스틱'에서 재인용).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판사, 원고, 피고 삼자가 서로의 행동을 보고 대응한다. 이런 복잡계를 계획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재판은 감각의 영역이 되며 특히 판사의 심증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눈치란 얘기다. 사법연수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더라도 재판에서의 대응은 많은 경험과 감각의 영역이다. 그건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훈련으로 갈고 닦았던 경험과 감각의 힘이 발휘되는 시간이다. 센스있고, 눈치있고, 논리적으로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문제인 것이다. 


https://blog.naver.com/pyowa/22315135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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