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리트머스 종이처럼 옅어진다.

(감사에서 살아남기)(41)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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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은 리트머스 종이처럼 옅어진다.>



‘리트머스 종이(litmus paper)’는 산성과 염기성을 측정하는 종이다. 리트머스 종이를 액체에 담그면 액체가 먹물이 번지듯 종이에 흡수되면서 색이 변한다. 산성이면 붉게, 염기성이면 푸르게 변한다. 리트머스는 위로 갈수록 점점 옅게 변한다. 당연하게도 아래를 건너뛰고 위만 변하는 리트머스 종이는 없다.



책임도 리트머스 종이 같다. 실무자를 건너뛰고 상사만 문책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사가 처벌받는 경우에도 실무자보다 약하게 처벌받는다. 이것이 보통이다.



윗사람이 힘이 쎄서, 윗사람의 눈치를 봐서 그런 것이 아니다. 감사사건이나 형사사건 모두 행위자의 책임을 가장 크게 본다. 행위자가 누구인가. 실무자다. 실무자가 책임이 없다면, 상사는 덩달아 책임지지 않는다.



감사를 하다보면, ‘시킨 사람 잘못이지, 어떻게 시킨대로 한 사람이 잘못인가요?’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조사가 시작되면 대부분 자기는 시킨대로 했으며, 전임자가 한 대로 하였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감사관은 이런 진술을을 전형적인 자백의 진술로 받아들이고 활용한다. 법적으로 진술을 바꾸어보면, ‘제 잘못한 것은 맞습니다. 상사와 전임자도 잘못한 위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같이 처벌해주세요. 그리고 저는 고해바쳤으니 선처를 바랍니다.’로 바뀐다.



위법한 지시는 거부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너무나 교과서적이어서 픽션에 가까운 이야기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며 살아간다. 수학적으로 생각해보자. 대부분은 업무처리는 아무일 없을 확률이 높고, 충성심을 보일 기회이며, 일이 잘되면 승진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업무를 거부하기보다는 같은 배에 올라타 맨 앞자리에 앉는 것이 확률적으로 훨씬 유리하다. 확률이 극히 낮은 위험이 현실화되면 그때서야 책임의 문제가 논의된다. 불이익도 너무나 크지만 확률은 너무나 낮아 기대값도 낮다. 실무자는 ‘이번은 괜찮겠지’, ‘여태까지 아무 문제 없었는데 뭐’라며 자신을 설득시킨다.



운이 없게도 너무나 낮았던 기댓값이 현실화되어 감사가 시작되었다고 하자.



감사가 시작되었다 해도 상사의 위법한 지시를 구체적으로 진술하기 어렵다. 이 감사가 어디까지, 어느 정도 진행될 것인지 가늠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사가 처벌받은 이후에도 실무자는 같이 근무해야 한다. 이번 건으로 상사가 퇴사할 만큼 문책을 받는다 해도 상사의 동기, 선배와 후배가 있는 직장에서 근무해야 한다. 지칫하면 상사를 물고 늘어졌다는 낙인이 돌아올 수 있다. 그러니 내 인생이 걸만한 것이 아니고서야 상사의 비위를 소상히 진술하기 어렵다.



용기를 내어 진술하기로 마음 먹어도 진술이 쉬운 게 아니다. 상사는 위법한 지시에 대한 증거를 남겨놓을만큼 어수룩하지 않다. 결국 상사는 이런저런 업무관련 토론을 한 사실은 있으나, 결국 기안대로 결재하였다는 간명한 논리로 대응할 것이다.



중한 문책을 받은 경우에도 상사의 위법을 진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상사나 조직에 대한 충성심에서 나온 결단일 수도 있지만, 꼭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사를 끌어들인다 한들 실무자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처벌수위가 달라지지 않는데, 상사까지 처벌받는다면 나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게 된다. 사건이 개시될 당시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해 상사를 끌어들이지 않는 진술을 했는데, 이후에 감사나 징계위원회에서 진술을 바꾸기도 어렵다.



결재라인에 있는 모두는 한 배를 탄다. 맨 앞자리에 기안자, 중간 관리자는 가운데, 마지막 자리엔 최종 결재권자가 앉는다. 모두 한 배를 탔지만, 추락한다면, 리트머스가 번지듯이, 제일 앞자리부터 추락한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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