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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Dec 10. 2023

신사리와 봉사리는 다른 세계였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해, 봉부아)

https://blog.naver.com/pyowa/223288354878



'봉천동 부자 아줌마'인 봉부아님이 장편 소설을 썼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떻게 어떻게 봉부아님 블로그를 구독하게 되었고, 첫 에세이 '다정함은 덤이에요'를 읽었다. 에세이집에 후속작은 보통 에세이다. 점프를 해도 단편소설인데, 단박에 장편소설로 퀀텀점프를 했다. 천명관 작가나, 이기호 작가처럼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등극할 기세다. 아님 이번 작품으로 소설은 끝내고,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써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수도 있겠다.



책 표지에 4명의 아줌마가 나온다(봉부아님이 스스로 아줌마라고 했으니 부르기 편해 좋다.).종교에 빠진 친구(주은 엄마), 새 여자에 빠진 친구(세진), 허영에 빠진 친구(미영), 태극기 친구(미진)다. 등장인물 한 명을 추가한다면 봉부아님 남편분이 있겠다.



'다정함은 덤이에요'의 번외편 같은 소설이다. 에세집을 쓰면서 일어났던 뒷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냈다. 사건의 흐름이나, 인물의 성격이나, 깊이 있는 묘사 같은 걸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차분하고 편안한 글이다. 저변에 깔려 있는 작품정신이라면, '삶에 대한 유머'이지 않을까. 책 안의 편집자의 입을 빌어 봉부아님은 말한다. '깊고 아름다운 글만 글인가요. 평범하고 편안한 이야기도 가치가 있지요.'



봉부아님의 에세이에 장편소설을 더하면 소극장 연극이 될 수 있겠다. 무대는 편의점과 카페, 등장인물은 아줌마 4명과 남편 1명, 나머지는 1인 다역. 봉부아는 에세이를 쓰며 편의점에 있었던 일을 상상한다. 그러다 다시 편의점으로 출근한다. 평범한 일상들이 무언가를 사러 온다. 퇴근해 친구들을 만나 남편을 흉본다. 무대장치도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봉부아님 이제 희곡을 쓰시면 되겠다.



나는 신림동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다. 56번가 사거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림사거리와 봉천사거리 어디쯤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사거리를 신사리, 봉사리라고 줄여 불렀다. 관악구는 '사거리'만 서울이었고, 벗어나면 시골보다 더 시골인 달동네였다. 우리 고등학교는 철거가 한창인 달동네 꼭대기에 있었다. 신사리와 봉사리는 달동네와는 다른 세계였다. 달동네에서 출발한 289번 버스는 몇 정거장만에 '사거리'라는 다른 세계에 도착했다. 휘황찬란했고, 사람은 넘쳐났다. 버스는 오도가도 못하고 한참을 멈춰있었다. 차장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 상점이 보였다. 무언가 사고, 무언가 사먹는 사람은 우리집과는 다른 족속의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다.



나의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면 급변하고, 깊은 뜻이 있는 듯 하다가도, 대부분은 평범하고 편안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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