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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an 15. 2024

영정사진은 엄숙하지 않은걸로, 조금은 웃음이 깃든걸로.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 문인101인)(2/2)

https://blog.naver.com/pyowa/223323016941


2006년에 출간된 책이니, 원고는 2005년에 쓰여졌다. 가상의 유언장이지만 19년전의 유언장이고, 일흔 정도의 문인들에게 원고청탁을 했으니 실제로 돌아가신 분도 여럿 되시리라. 작가분들은 가상의 유언장이 끝난 후 진짜 유언장을 쓰셨을까. 가상의 유언장이 진짜 유언장이 되어버린 분들도 있을것이다.


문인 101명은 모두 진지했다. 감정은 크게 2가지였다.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고통에 시달리다 가족의 얼굴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다가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 


헤어질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몰핀을 놓아달라고 부탁했다. 치료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연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치매에 대한 걱정도 컸다. 어느 날 치매가 걸린다면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자식들과 함께 있어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랬듯, 남은자들에게 금새 잊혀질 거라는 걸 알았다. 자신이 죽어도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고, 가족들이 일상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끔, 아주 가끔은 자신을 생각해 달라고 했다. 자신의 유언이 그대로 되지 않겠지만 남은 가족들의 우애만은 꼭 지켜지길 당부했다.


최인혜 작가는 헤어진 연인에게 유언했다.

가진 것은 없지만 그대에게 무엇이든 남겨주어야 될 것 같습니다. 소중히 간직하던 반지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래 전 어느 날, 그대가 끼고 있던 반지를 선뜻 빼내어 내 손가락에 끼워주었던 그 정다움을 기억합니다. 그때의 맑고 환한 웃음을 떠올리면서 깨끗한 한지로 고이 싸서 이름을 적어두겠습니다. 부디 사람에게서 받은 허망한 아픔을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좋은 친구였던 그대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최인혜, 297쪽)


할머니가 되어도, 할아버지가 되어도 젊은 한때의 순간은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다.


누구나 죽는다. 정신이 맑을 때 죽는 그 순간과, 죽고 난 후 며칠을 상상해 보야한다. 이해인 수녀님은 '미리 쓰는 유서'에서 영정사진은 조금은 웃음이 깃든 사진으로 놓아달라고 하셨다. 동료 수녀님에게는 사람이 가고 나면 소유물도 빛을 잃으니 유품을 빨리 정리해달라고 하셨다. 


영정 사진은 너무 엄숙하지 않은 걸로, 조금은 웃음이 깃든 걸로 놓아주세요. 생각보다 빨리 나를 잊어도 좋아요. 부탁 따로 안 해도 그리 되겠지요. 수녀원의 종소리, 하늘과 구름과 바다와 새, 눈부신 햇빛이 조금은 그리울 것 같군요. (이해인, '미리 쓰는 유서' 중 일부)


내 영정 사진도 너무 엄숙하지 않은 걸로, 조금은 웃음이 깃든 걸로 놓아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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