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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an 27. 2024

사라질 뿐, 작별하진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https://blog.naver.com/pyowa/223335612115



나의 고향엔 국군 토벌대 이야기가 곳곳에 있었다. 


산을 지나갈 때도 시체가 있는 자리라며 돌멩이나 나뭇가지로 덮어주어야 하는 곳이 몇 곳 있었다. 돌아갈 길은 없었으니 나뭇가지나 돌멩이를 들고 다가가 시체라는 자리에 던지고 냅다 달렸었다.


우리 동네에 제삿날이 같은 사람이 많았다. 토벌대가 마을을 덮쳤고, 남아 있던 청년들은 모두 죽었다. 인민군도 여럿을 죽였고 밀고 밀리는 전투에서 피아는 따로 없었다. 나를 살려주는 사람이 아군이고, 가족을 죽이는 사람은 적군이었다. 청년들이 사는 방법은 한쪽 편에 몸을 담거나 숨는 것 뿐이었다. 그것은 사상적 선택도, 정치적 결단도 아닌 그저 생존의 본능이었다.


토벌대에 밀리게 된 빨치산은 산에서 밀리고, 들에서 밀리고, 결국 해안가에 도착했다. 바닷가 소나무 숲에서 그 뒤 모래밭에서 모두 총에 맞았다고 한다. 


그 근처 간척지 둑방에 커다란 우물이 있었다. 우물 구멍은 커다란 돌멩이와 시멘트로 막혀 있었다. 아이들에게 도는 소문은 우물에 시체를 넣고 더 이상 쓸 수 없도록 돌로 막아 놓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여러 이야기가 겹쳐져 시체 우물은 나에겐 아무런 의심이 들지 않는 전쟁의 사실이었다.


죽은 자의 가족들은 항의할 수 없었다. 1980년대가 되었는데도 순사가 정기적으로 그들에게 다녀간다고 수군덕거렸다. 


모두 다 수근거릴 때 무력과 강력한 권력 앞에 투사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운명이란 수용할 수밖에 없지만, 때로는 저항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했던 그들을 실패를 예감하지만 치받는다. 누군가는 적의 수장을 암살하고, 누군가는 폭약을 두르고 적진에 뛰어든다. 감옥에 가도, 고문을 당한다해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앞에 나선다.


무슨 일이 일어난들 세월과 시간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시간은 내가 어찌 되거나 말거나 차곡차곡 지난다. 지나간 일도, 다가올 시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 없는 슬픔도, 굳은 맹세도 세월의 붓으로 덧칠된다. 새롭게 내리는 감정이 놓여 있는 상처를 덮는다. 다행히 슬픔도 사랑도 푸딩을 덜어내듯 사라지진 않는다. 덧칠이 되어 잘 보이진 않지만, 기억 어디쯤, 가슴 한 구석에 그때는 그대로 있다. 작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 마저도 낡아져 있긴 하지만 그대로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어느날 모두 사라진다. 


눈 속에 파묻힌 나는 죽어가며 얼굴에 떨어지는 눈의 차가움을 느낀다. 나의 혼은 눈송이에 묻혀가는 나를 내려다본다. 과거의 나는 눈 속에 파묻힐 순간을 향해 걸어가는 나를 본다. 훗날 나의 영혼은 운명을 조망한다. 과거도 미래도 어느 것 하나 고정되어 있지 않아 현재의 나도, 과거와 미래의 나도 안절부절한다. 서로 작별하지 않는다고 다짐하며 살아낸다. 어느 날 이 네 개의 퓨즈가 동시에 꺼지면 나는 완전히 사라진다. 잠깐 잔상이 흐르다 영원히 잊혀진다.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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