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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Feb 01. 2024

울기만 했겄냐. 간절하다뿐이었겄냐.

(눈길, 이청준)

https://blog.naver.com/pyowa/223341307032



지인분의 추천으로 이청준 선생의 '눈길'을 읽었다. 읽으면 눈물이 나고,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문체, 인물, 구성 모두 세련되었다. 세련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책을 읽고 있다는 것마저 잊게 만든다. 어쩌지 못하는 인생과 그 답답함과, 그래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 이야기다.



명작이므로 모든 설명은 군더기기고 구차할 수밖에 없다. 이웃분들 꼭 읽어보시면 좋겠다. 아니면 아래 요약한 부분만이라도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그럼 찾아 읽어보실 것이다.



고등학생 아들은 도회지에서 집이 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면소재지에서 걸어 1시간도 더 길리는 집에 들어왔다. 망했다는 집에 여전히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팔려버린 텅빈 집에서 아들에게 저녁을 해주고 단 둘이 하룻밤을 잔다. 아들은 망해버린 사연은 차마 묻지 못했다. 새벽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을 피해 동트기 한참전 길을 나섰다. 신작로까지 가려면 산길을 한참 가야했다.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미끄러지고, 일으켜주고 하며 서러운 새벽길을 걸었다.



차부에 도착했다. 변변한 당부도 못했건만 도청가는 버스가 아들을 채갔다. 여전히 동트기전이었다. 어머니는 눈쌓인 시오리길을 뒤돌아 걷는다. 컴컴한 신작로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동이 터온다. 신작로에 어머니와 아들이 발자국이 그대로 있다. 망해버린 집안과 돈 없이 공부할 아들 생각에 갑갑하고, 폭폭하다.



산길로 들어서니 아들과 어머니와 발자국이 그대로다. 쓰러지고, 버둥거리고, 서로 이르켜주던 자국이 그대로다. 서러움이 터져 나온다. 울며 길을 걷는다. 아들의 흔적을 밟아가니 서럽지 않은 발자국이 없다. 발자국마다 눈물이 떨어진다. 저고리로 눈물을 훔쳐보지만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부디 몸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빌고 빌며 마을로 돌아온다.



"간절하다뿐이었겄냐.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하다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

('눈길' 중 일부,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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