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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의 제안이 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남한산성, 자전거여행)(18)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351052238


청나라 장수 용골대는 전전긍긍했다. 조선의 버티기는 25만 대군에게 고민거리가 되지 못했다. 용골대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청태종이 오고 있었다. 전쟁을 끝내지 못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다.


주화파 최명길 역시 전전긍긍했다. 사직이 끝나선 안 되었다. 용골대의 항복조건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고, 그마저도 믿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항복조건은 점점 심해졌다. 사직을 유지하려다 사직마저 끝나고, 자신은 역사의 매국노가 될 처지였다. 수많은 전사자들과 희생된 백성들을 거품으로 돌리고 항복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청태종은 어쩌자고 한양까지 온 것일까. 만주와 대륙을 비울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자신이 와야만 한다는 결심은 어떻게 한 건가.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으니, 최명길을 지지할 수도 있고, 김상헌을 지지할 수도 있다. 역사 속에 있다면 치욕으로 삶의 길을 도모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삶의 도모마저 실패하면 삶은 치욕속에 끝나게 된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로의 진격, 히틀러의 러시아로의 진격, 일본의 항복, 우크라이나 전쟁이 떠오른다.


패색이 짙을 때 항복의 제안이 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무기를 받아 버티는 전쟁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시간만큼 전사하는 군인은 늘것이고, 희생자는 쌓일 것이며, 포탄은 국토에 날아와 박힐 것이다. 더욱 패색이 짙어진다. 그럼에도 수많은 전사자, 희생된 국민들, 초토화된 국토를 앞에 두고 종전선언을 건의할 수 있겠는가. 종전선언을 검토하는 순간 정권이 박탈될 것이고, 그들의 생사는 새로운 권력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건의할 수 있겠는가.


역사는 말해준다. 패색이 아무리 짙어도, 망하기 직전까지 버틸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의 휴전은 1953년 당시 미군과 중공군이 전쟁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다른 나라 전쟁에 참전하고 있었다. 전사자는 있었지만 앞으로 희생될 전사자가 더 소중했다. 희생된 국민도 없었고, 초토화된 국토도 없었다. 미국과 중공은 망하기 직전까지 싸울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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