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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Mar 10. 2024

차갑게 만져지던 동전 두 개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1/2)

https://blog.naver.com/pyowa/223379167475




삶은 일상의 중첩이고, 일상은 감각의 총합이다. 이야기는 일상의 요약이어서 감각과 순간이 담길 수 없다. 이야기란 감각과 순간이 떠오르게 하는 이정표 같은 것이다. 



이야기만으로는 아무런 감각도 공감할 수 없고, 순간이 그려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가리키는 이정표에서 잠깐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와 감각이 있어야 한다.



훌륭한 작가들은 이야기로 독자를 잠깐 멈춰세운다. 살아있는 일상을 그려내고, 일상에서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살려낸다. 훌륭한 작가여도 대신 감각할 순 없으니 독자가 느낄 여유와 감각이 없다면 작가의 역량은 소용없는 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글을 처음 읽었다. 감각적이다. 순간을 잡아채 넓게 좌우로 그려내는 솜씨가 세련되었다. 동전으로 쭈쭈바를 사먹었던 이야기를 썼다. 그때의 선명했던 감각에 대해 보여주었다.



글을 읽으며 나도 동전에 대한 선명한 감각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시절 할머니 집에 갈 땐 껌을 두 통 사갔다. 큰 할머니댁과 작은 할머니댁이 옆집이어서 두 통을 샀다. 어머니는 10살인 내게 '할머니댁에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곤 껌 두 통 값 200원을 주었다. 



내겐 큰 돈이어서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 거리며 걸었다. 차갑게 만져지던 동전의 느낌과 손에 베어나던 동전 냄새가 선명하다. 껌을 사러 점빵에 갔지만, 10살인 나는 아이스크림 통에 눈이 갔다. 그리곤 상상했다. 고무 뚜껑을 열면, 은색의 스텐리스에서 얼음바람이 올라오고, 차가운 얼음 주머니를 꺼내 올리면 그 아래 동그랗게 쌓여 있던 아이스크림. 옛날 이름 하드. 껌을 사러 갔을 땐 사먹지 못했던 하드. 왠만해선 사먹지 못해서 그런건지 맛보다는 차가움만 선명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글과 영화를 찾아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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