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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Mar 12. 2024

까끌까끌한 아빠의 수염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2/2)

https://blog.naver.com/pyowa/223380685327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순간이 떠오른다. 영상일텐데도 순간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지나고 나면 순간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관속의 아버지를 만지다 까슬까슬한 수염을 스쳤다. 어렸을 적 느꼈던 아빠의 까끌까끌한 수염을 떠올렸다.


까끌까끌한 수염은 젊었던 아빠의 수염이다. 다른 어른의 수염을 만질 일이 없고, 자라면 아빠와 얼굴을 부빌 일도 없다. 면도를 하던 아버지가 장난치며 수염을 내 얼굴에 부볐던 때가 떠오른다. 그 밝은 순간, 까끌까끌한 낯선 감각이 선명하다. 나는 몇 살이었을까. 아버지는 30대였겠지. 이제 아버지의 수염을 느껴볼 순간 있을까. 여러 생각에 시큰해진다.


삶이 순간으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이 때도 영상으로 살기보다는 순간을 만들어가는 삶을 사는 건 어떨까. 더 감각하고, 더 집중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순간과 다음 순간을 성큼 성큼 살다보면 훗날의 나를 만날 것이다. 변화된 나를. 그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처럼 인사를 해야지.


'오랜만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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