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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공부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무서운 인생의 낭비다.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851871460


91년 대학 신입생 시절 내 꿈은 '지성인'이 되는 거였다. 지성인.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그땐 대학생은 '지성인'이어야했다. 그래선지 학교에 할부 책장사들이 돌아다녔다. 혼자 벤치에 앉아 있으면 은근슬쩍 다가와 앉아 '신입생이신가봐요'하며 말을 시켰다. '순수이성비판', '꿈의 해석' 이런 걸 보여주더니 대학생 필독서 카탈로그를 펴들었다. 언젠가 들어본듯한 제목때문이었는지, 필독서란 말에 혹했는지, 아무생각 없었던 것인지, 전집을 샀다. 1년동안 할부고지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꿈의 해석' 한 권만 읽고, 나머지는 몇 년 후 버렸다. 지성인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 군대가고, 복학하고, 시험준비하고, 직장에 다녔다. 영상을 보고, 기사와 책을 읽으며 지식과 지혜에 감탄했다. 여전히 지성인이 되고 싶은 상태로 30대는 지나가버렸다.



마흔이 되었다. 그 해 어느 날 의문이 들었다. 마흔인데도 나는 왜 배우고만 있는가. 도대체 언제 지성인이 될 것인가. 죽을 때까지 배워야만 하는 건 맞지만, 배우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언제까지 옮겨 적기 급급할 것인가. 옛 지성인들은 5년, 10년을 배우고도 세상을 논했지 않은가. 책도 모자라고, 도서관도 없던 시절인데도 30대 중반이면 나라를 경영하고, 명성은 중국에 다다랐지 않은가.



그때부터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뭐라도 쓰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배우고만 있을 순 없는 일이었다.



50대도 중반으로 향해 간다. 19살 내가 꿈꾸던 정도의 지성인은 된 것 같다. 대학시절 이룰줄 알았던 지성인이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되었다. 누군가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지성이지만, 19살 내 기준으로보면 괜찮은 아저씨가 된 것이다.



배우기보다는 정보와 지혜를 쓰고 말하며 살아가고 싶다. 젊은 내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때로는 자랑스러운 지성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일이 있다. 때로는 공부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무서운 인생의 낭비라는 점이다. 본인은 지적 활동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어떠한 정보도 생산하지 않는다면...

(스마트 워크.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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