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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만 이어집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862277356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고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원작은 '요시다 아카미'의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만화에서 감동이 컸다. 원작과 영화가 있다면 영화를 먼저 보라는 말이 있다.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든다 한들, 책에 더한 나의 상상만한 감동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재밌게 봤다. 만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매미 울음소리와 스즈의 울음 장면을 기대했지만 없었다. 매미 소리에 스즈의 울음이 덮히는 장면을 그려내긴 어려웠을 것 같다.


삶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 생겨나는 데도 이유가 없듯이, 사라지는 데에도 이유가 없다. 스즈의 엄마는 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했다. 스즈를 낳았지만 이내 병들어 죽었다.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다시 결혼했지만 얼마 있다 죽었다. 스즈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스즈는 이복언니들과 함께 살게 된다. 스즈는 '나의 존재만으로도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유가 무엇인건 삶은, 세상은 이어진다. 사라지는 모든 것은 이어진다.


네자매는 매실주를 담근다. 스즈가 매실주를 맛본다. 어린시절 우리집 모과주가 떠올랐다. 외할머니댁에500년이 된 큰 모과나무가 있었다. 귀한 모과였지만, 우리집에는 언제나 모과가 많았다. 시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집에 꽉찼다. 모과주도 매년 담궜다. 모과의 달콤함과 술이 섞여 어린 입맛에도 딱 맞았다. 모과주 담금통을 몰래 열고 모과조각을 훔쳐먹곤 했다. 꼭꼭 씹어 빨아먹은 후 가루처럼 변한 모과를 뱉었다. 달콤함은 어떤 사탕보다도 좋았다. 걸리면 혼날 걸 알지만, 유혹을 이길 순 없었다.


영화에서 '바닷고양이 식당' 아주머니가 암으로 죽는다. 바로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하는데 병원 장면은 없다. 식당을 닫고 바로 장례식 장면이 이어진다. 마지막 영업일에 스즈와 아이들이 온다. 아이들을 보며 말한다. '아름다운 걸 아직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영화는 나의 사소한 이야기, 사소한 장면이 삶이고 행복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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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9694e7bd-54e7-4bfc-9f57-5eaa146db585.jpg 여름소나기처럼 요란스럽던 매미 울음소리가 그칠 무렵 스즈의 울음억수같이 퍼붓는 매미 울음소리로도 지우지 못할 만큼 스즈의 울음소리는 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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