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악했다. 어느 편인지를 밝히라니!

(시무 7조, 조은산)

by 고길동

시무7조의 진인 조은산님이 책을 출간했다. 그의 글을 꼼꼼히 읽어본 적은 없다. 이번에 시무7조부터 관련 글을 꼼꼼히 읽었다.


시무 7조는 기사화되자마자 찾아봤다. 일단 길어서 내가 뭐 이런것 까지 읽어야하나 생각했다. 속독으로 봤는데 문장이 놀라웠다. 글을 조금이라도 써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텐데 대단한 내공이다. 인문학적 소양도 깊고, 무엇보다 글을 많이 써 본 솜씨다. 진지한 문장을 무겁지 않게 끌고 나가며, 휘몰아치는 문장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상당히 정치적인 글이어서 나는 정치인이거나 언론인 아닐까 의심했었다. 윤석렬을 만났다는 뉴스를 보고 정치인도, 언론인도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니 다 헛것같은 의심이었음을 알겠다.


나에게 조은산은 문체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우화부분은 김훈 선생의 문체였다. 작가 조은산도 분명 김훈 선생 작품을 많이 있었을 것이고 좋아할 것이다. 문장은 짧고 간결하다. 그런데도 짧은 문장이 앞 문장을 물고들어가 화려한 느낌이 든다. 줄바꾸기를 아주 잘 사용하며, 댓구에 능하다. 그러면서도 진지하다. 조선의 '책문'형식으로 써냈다. 무릎앞에 도끼를 두고 고하는 만큼 비장하다.


조은산은 '너는 어느 편이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도 적절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이 문장은 김훈 선생문장이 떠오르는데 가히 진리라할만 하다.


'지식인이라면 어느 편인지를 분명히 밝히라'고 삿대질을 했다고 한다. 나는 경악했다. 어느 편인지를 밝히라니! 어느 편에 속하는 것이 나의 지성일 수 있는가. 당신들은 또 어느 편인가.

< -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중, 김훈>


책은 에세이, 우화, 상소문, 후기 이렇게 네 단락으로 쓰여있다. 상소문은 이미 청와대 게시판에 올려진 것들이고, 에세이, 우화, 후기를 이번에 써서 묶은 것으로 보인다.


역병 아래의 부와 가난을 말하는 것이 마음 아파 나는 잠시 글을 멈췄다.


이 부분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역병아래에서도 정의는 있어야겠지만, 한 번의 인생에서 역병을 버텨내기란 충격적인 것이다. 이념을 위한 과정이라지만 나와 가정을 버텨야 하는 시간은 너무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퇴근해서 거실로 들어올 때 나는 다행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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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산님 블로그>

https://blog.naver.com/goodmountain7/22245889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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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pyowa/222471808536



===========<이하 발췌>


인간은 소유함으로써 진정으로 아껴줄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아끼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마저도 아껴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알게 된 소유, 그것이 가진 위대한 힘이었다. 나는 소유함으로써 사람이 되었다. 무소유를 권하는 말들 앞에, 그러므로 나는 대항하리라. 소유를 통해 먼저 인간이 된 후, 무소유를 실천하겠노라고.


습성인지 천성인지 알 수 없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언제나 두 눈을 부릅뜨고 삶에 대한 투지를 불태운다. 그것의 원동력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두려움이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이제야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고통과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황된 것들을 향한 시선을 멈추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했을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가난은 나의 몫이었다. 정치인의 몫이 아니었다. 정의도 나의 몫이었다. 세상에 바랄 게 아니었다.


아랫것들에게 법은 멀어서 닿지 않는 허상과 같았고, 위엣 것들에게 법은 가까이 손에 닿는 이상과 같았다. 아랫것들의 세상에서 법은 존재와 부존재를 오갔고, 위엣 것들의 세상에서 법은 개혁과 장악을 오갔는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진 건 매한가지여서 무참했다. 민생이 아닌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법치는 정신이 아닌 사물로써 매김했고, 정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전리품으로 변모했다.


역병 아래의 부와 가난을 말하는 것이 마음 아파 나는 잠시 글을 멈췄다.


승정원에 모여 앉아 논의한 끝에 결국 '유감을 표명한다', '자제를 촉구한다', '엄중히 경고한다',는 문구 대신 '주목한다'라는 표현으로 그 끝을 장식했다. 대신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중의적인 표현이니 이는 모두 그대들의 공이요"라며 술잔을 기울여 서로 필봉을 추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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