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살고 싶다.

서현, 건축을 묻다.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925284352



무엇에건 논리와 취향이 있다. 논리는 정답을 찾는 것이고, 취향은 느끼는 것이다. 취향은 정답이 없을 것인데, 세상이 끄덕이는 행동만 하며 살게 된다. 남의 이야기 속에 파묻혀 가성비의 삶을 산다. 남의 일에 바빠 나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책은 '건축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한다. 익숙한 단어에 '무엇인가'를 붙여 보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아빠란 무엇인가', '돈란 무엇인가.', '몸이란 무엇인가', '책이란 무엇인가'. 순간 할 말이 턱 막혔다. 질문은 정답을 구하기보단,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콕 집어 물어보는 듯 했다. 나의 생각, 나의 취향을 물어보니 다른 이의 생각으로 둘러댈 수도 없다. 논리도 취향도 없이 무턱대고 사는 것 같았다.



책은 '용도'와 '기능'을 구분했다. 용도를 넘은 기능이 있어야 '건물'을 넘은 '건축'이 되는 것이라 했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용도, 나의 기능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으며, 쓸모를 넘어서는 존재 의의는 무엇일까. 의뢰인의 용도로만 살고 있진 않은가. 용도를 넘어 기능으로 사는법이 있을까.



조각의 재료가 덩어리이듯, 건축의 재료는 공간이다. 조각이 덩어리를 붙이고 덜어내듯, 건축도 공간을 나누고 쌓는다. 테두리와 구획으로 공간을 만든다. 그러니 허공void은 건축적 공간이 아니다.



어린 시절 0이 숫자가 아니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멀쩡히 숫자 0이 있는데 왜 숫자가 아니란 말인가. 몇몇에 물어봤지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0으로 어떤 수를 나눌 수 없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역시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는 못했다. 이제사 깨달았다. 0은 없음이지만, 10에서의 0은 1의 존재방식이다.



건축은 인간과 관계될 때에야 의미가 있다. 건축적 공간은 인간의 배경이 되고서야 기능한다. 수학적 공간은 논리의 배경이고, 과학적 공간은 물질의 배경이며, 건축적 공간은 인간의 배경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살고 싶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

(louis H. Sullivan)



Kristallpalast_Sydenham_1851_aussen.jpg?type=w773 Crystal Palace, 1851년 1851피트(563m)의 길이로 건축 / 1853~1854년 시데남에 재건했으나 1936년 화재로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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