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도시, 서현)
국회의사당이 남산에 계획되어 설계까지 되었다 철회되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남산에 의사당이 세워질 경우 위치가 너무 높아 행정부와 사법부를 내려다본다는 이유였다. 어처구니 없다. 남산이 아니라 종료 자리에 짓기로 했다니 그것마저 어이 없다. 국회는 다행히도 여의도에 지어졌다.
https://blog.naver.com/pyowa/223981746773
서현의 책은 건축을 말하지만 인문학적 의문이 깔려 있다. 자잘한 것부터 커다란 질문까지 '왜?'라는 호기심 속에 살아왔단 걸 알 수 있다.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간명하고 선명하게 써낸다. 긴 문장, 번역투 문체, 권위있는 잡지나 교수 인용 같은 게 없다. 서현의 글은 문장과 내용만으로 선명하여, 스스로 힘을 갖는다. 이런 문장은 언제나 귀하다.
'왜' 라고 묻는다는 얘기는 내가 판단하겠다는 자존감이다. 누구의 권위에도 기대지 않겠다는 말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을 것인데, 누구의 생각이더라도 나와 다를 뿐 나보다 우월한 건 아니다. 누구의 공감과 인정이 없더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살겠다는 다짐이다.
인문학적 의문과 소양이 쌓이지 않으면 질문하기도 어렵다. 질문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할 순 없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둘러보고, 남들이 얘기하는 지식을 전해듣는다. 사람은 많고, 지식은 넘쳐나므로 바쁘다. 바쁜 하루 일과중 '왜?'라는 의문의 시간은 없다.
어릴 적 성묘를 가면 절을 했다. 솔가지를 꺽어 절 할 자리에 놓고, 신발을 벗었다. 돗자리가 없을 때도 신발은 벗었고, 솔가지는 손이 놓일 자리에 깔아 두었다. 어릴 적 왜 그런지 어른들에게 물어봤다. '산소 앞에서 예의를 갖춰야 하는거야' 어른의 말씀이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나마나한 말씀이라 실망했다.
서현 교수의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서현 교수는 '방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한국의 '방문화'는 조금은 식상한 표현이다. '한국식 문화' 어쩌고 저쩌고 하며 숟가락 얹는 책들이 많았다. 온돌문화라느니, 융통성이 있다느니, 지혜롭다느니, 어쩌니 저쩌니 여러 말은 써놓았다. 그럴 듯하면서도 가려운 곳이 긁어지지 않았다.
서현 교수는 '방'에 대해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신발을 벗느냐 아니냐'. 이런 명쾌한 문장이라니. 옛날 부엌은 방이 아니고, 지금 부엌은 방이다. 신발을 신는 광은 방이고, 신발을 벗는 광은 창고다. 절은 어른에게 방에서 한다. 산소에서 절은 조상에게 한다. 역시 방의 개념이다. 벌안은 방이고, 조상님은 방에서 절을 받는 거였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침대 대신 요를, 식탁 대신 밥상을 펴고 개고 접었다. 유연했다. 방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단 하나의 변수는 그 위에 오르기 위해 신발을 벗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무덤 앞에 돗자리를 편다. 이 돗자리가 방인 이유는 여기서 절을 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오르기 때문이다.
(빨간 도시, 서현)
국회의사당이 남산에 계획되어 설계까지 되었다 철회되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남산에 의사당이 세워질 경우 위치가 너무 높아 행정부와 사법부를 내려다본다는 이유였다. 어처구니 없다. 남산이 아니라 종료 자리에 짓기로 했다니 그것마저 어이 없다. 국회는 다행히도 여의도에 지어졌다.
무슨 일을 하든 기본기를 쌓고, 의문을 가지며 살아야한다. 의문이 있으려면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상상할 순 없다. 상상할 수 있으려면 역사와 철학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왜라고 물을 수 있는 힘을 준다.
.
.
남산에 의사당이 세워질 경우 위치가 너무 높아서 행정부와 사법부를 내려다보게 되는 점 때문에 사업을 중단하고 종묘에 국회의사당을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빨간 도시, 서현
자신 있게 구사하는 기본기, 기술은 예술의 세계를 이뤄내기위해 갖춰야 할 능력이다. 그러나 예술이 기술을 넘어서게 하는 요소는 상상력과 세상을 보는 눈이다. 성찰의 깊이다. 상상력의 발현을 위해 배경에 깔려야 할 것은 인간이 쌓아온 역사와 철학에 대한 통찰력이다. 바로 인문학적 깊이다. 눈을 동그랗게 하는 상상력과 뚜렷한 가치관에서 나온다. 인문학은 왜라고 물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빨간 도시, 서현
모국어로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없는 이라면 건축가 이전에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말과 글 사이의 간극을 좁히면서 그 품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건강한 사회인의 책임이기도 하다.
빨간 도시, 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