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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an 13. 2021

그때 그 술자리

어제에 이어서 이상한 이야기

 밤 9시, 버스정류장에서 그를 기다렸다. 후드티를 입고 버스에서 내리는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우리는 둘 다 스무 살이었다.      

 

“어디 갈까?”

 “와바 갈래?”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비싼 술집이었던 세계맥주집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곳을 향해 갔다. 자리에 앉아서 갖가지 안주와 술을 시켰다. 무슨 놀이처럼 술을 한병시킬때마다 메뉴판을 보면서 시시덕거렸다. 그때 내가 마지막으로 시킨 술은 칵테일이었고 이름이 ‘동해’였다. 파란 빛깔의 그 술을 넋이 나간 듯 쳐다보았다. 그 시간에 그렇게 애인도 아닌 남자 사람 친구와 술을 마시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와  연인은 되지 못했다.  서로의 생일파티에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뒤로도 그가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마다 술을 마셨는데  즐거운 술자리 말고 다른 것들은 공유하지 않는 사이에서 끝이 나버렸다.      




그 뒤에도 밤이 되면 누군가를 만나서 술을 마셨다. 여자 친구와 함께일 때도 있었고 남자와 함께일 때도 있었다. 어떤 밤은, 애인의 다른 여자와 술을 마신 적 있다. ‘바람 폈던’이라고 적지 않은 이유는 결국 어느 쪽이 바람이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연애를 시작한 것은 내쪽이 분명해 보였지만 그의 마음에 더 든 사람이 나인지 그녀인지 헷갈렸다. (지금은 확실히 그녀 쪽이라는 걸 알지만.)




평소와 같았던 토요일 오후, 독서실에서 전화음이 울려서 전화를 받았더니 내 남자 친구의 여자 친구라는 그녀가 전화가 왔다. 한참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 사귀었냐 알고 있었냐’ 이런 질문을 서로에게 한 뒤 전화를 끊을 무렵이었다.     

 

“그런데 한번 보고 싶네요.”



나도 모르게 본심을 말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하던 공부를 대충 끝마치고 독서실을 나왔다. 시내에 사람은 많았고 그녀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느 순간 필름이 끊긴 것처럼 그녀가 내 앞에 있었다. 까막 색의 어중간한 머리 길이를 묶고. 팔다리가 길었고 쌍꺼풀이 없었다. 나는 운동복을 입고 맨얼굴로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녀의 작지만 까만 눈동자가 진한 눈에 힘껏 칠한 마스카라가 보였다. 그걸 보니 ‘나도 마스카라 정도는 바르고 나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대화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술집에서 시킨 안주를 반도 먹기 전에 나는 금방 술이 똥이 되었다. 그때의 애인이 그녀가 아닌 나를 데려다주었다. 기억나지 않은 고해성사만 몇 시간을 그에게 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스무 살 때 그러니까 그가 나와 사귀지 않는 게 이상했고 3년 만난 남자의 여자 친구와 만난 게 좀 이상했다. 어제부터 시작되는 이 이상한 이야기들은 참 끝도 없다. 하지만 그 술자리들은 모두 끝이 났다.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 그때 그랬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     

 


지금 와서 보면 뭐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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