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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an 23. 2021

커피랑 도서관

 어느 날부터 집 근처에 있는 커피랑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음악이 있고 커피 향이 있다. 물론 커피도 있다. 독서실 같은 분위기인데 또 도서관 같기도 하다. 시간별로 요금을 지불할 수 있어서 합리적이고 내가 일하는 분양사무실 바로 옆 건물이라 가기도 편하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서 지하철 주위에서 물티슈를 손님들에게 나눠주다가 어딘가에 비를 피하러 가려고 간판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  간판을 발견했다. 아파트 이름과 내 번호가 붙어있는 물티슈가 가득한 여행 캐리어를 들고  '저기는 무슨 이름이 저렇게 사실적이야. 참 별로네.’ 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막상 들어가니 책상과 의자가 많이 있고 조명도 예쁜 곳이었다. 게다가 책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 장소에 가끔씩 들려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노트를 사서 뭔가를 적었다. 그러는 게 좋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한 그곳에서 책을 읽다가, 책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 권씩 두 권씩 책을 샀다. 그곳에 있던 책들이 내 반지하방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싱크대 하부장이 모두 책으로 채워졌다. 콤콤한 곰팡이 냄새가 금방 베기는 바람에 책은 결국 본가로 보내고 말았지만 그곳이 책으로 채워지는 것은 어쨌든 술이나 바퀴벌레로만 채워지는 것보다는 좋았다.     

책을 읽을 때면 그 공간 속에서 나는 자유롭게 놀 수 있다. 쓸데없는 얘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이런 심각한 질문에 대한 답을 잠시 찾지 않게 된다.     




 서울에서 분양계약서는 하나도 작성하지 못했지만 그때 샀던 책들은 지금 내 책꽂이에 꽂혀있다.


지금 와서 보면 분기별로 특정한 장소를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장소 덕에, 그 물건들 덕에 그 시간을 버텨온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어떤 의미에는 같은 맥락 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사람한테 기대는 것은 잘 못하지만 어떤 공간을 특별히 아낀다. 일상을 지키는 힘이 그 공간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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