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무기력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나를 움직이게 한 무기력에 대해.

by 김필영

언젠가부터 나는 인생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방석이나 색종이를 잘라 무언가를 만들었고 가끔은 재활용이 될 우유 팩을 굳이 씻어 들고 오라고 해서는 그걸로 저금통이나 각종 로봇 같은걸 만들었다. 정말 그런 시간들이 끔찍했다. 하고 싶지 않을걸 해야 하는 그 슬픔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는데 학교라는 곳은 그것의 집합소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급식소에 모두 뛰어갈 때 내가 마지못해 걸어가고 있으면 그렇게 혼자서 천천히 걷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싫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싫어하는 일을 당연하게도 또 못했다. 그런데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를 다녔다. 어쩔 수 없네 라는 마음으로.




그런 무기력한 마음은 성인이 되고 더 심해졌다. 실수와 실패를 반복할수록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졌고 그러는 사이 방바닥에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그래서 안다. 방바닥에 붙어있는 것들을.

하얀 각질, 검은색 머리카락, 그리고 먼지들. 20대 후반 그런 것들을 퇴근 후 6시간씩 쳐다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당연히 그때도 나는 팔이 없지 않았다. 다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내 하루는 남긴 음식물을 밖에 내놓기가 귀찮아 냉동실에 얼리고, 맥주를 마시고 누워서 먼지를 바라보다가 아침에 출근. 29살 나는 그것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기력은 마치 블랙홀처럼 생각이라는 걸 할수록 더 깊어졌다.

길이 보이지 않는 차도를 운전하는 기분.





결혼 후에도 당연히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후에는 매일매일 글을 쓰게 되었고 글쓰기를 통해 내 무기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바라보다 보니 말도 걸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아침이면 일어나야 할 힘을 찾지 못해 몇 시간을 뒤척인다. 뒤척이다 보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 몇몇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체념한다. 그들처럼 될 수 없네. 역시.

그러다가 마지못해 일어나고 나면 그다음부터 다시 첫 시작이다. 양치를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뭘 먹이기 위해, 내가 씻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에너지를 낸다. 중간중간 몇 번이고 다 그만두고 싶다. 다 그만두고 그냥 누워서 숨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은 종종 이런 나 때문에 어린이집에 늦는다.




나는 바뀌지 않았다. 그대로다. 그렇지만 지금은 늦더라도, 내게 주어진 일을 마친다. 그러기 위해 몇 번이고 나는 무기력한 나와 대화를 한다.


‘지금 바로 양치를 하면 약속시간에 도착할 수 있어. 양치를 하는 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칫솔에 치약만 묻혀보는 건 어때?’


‘그래. 그럼 이제 딱 30초만 이를 닦아볼까? 30초만 닦아도 안 닦는 것보다 입안이 깨끗해지고, 입냄새도 안 날 거야.’


그렇게 하나씩 차근차근 나는 무기력에게 말을 건다.


'글을 쓰러 커피숍에 가볼까?'

'아니. 오늘은 정말로 누워서 숨만 쉬고 싶어. 너무 피곤해.'

'그래 글을 쓰지 말자, 대신에 청바지를 입자. 청바지를 입고 그냥 누워있자.'


청바지를 입고 누워있다 보면 아무래도 커피숍을 가는 방향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다시 또 말을 건다.


'자꾸 말 걸어서 미안한데, 너 청바지 입고 그냥 달콤한 커피나 한잔하러 가는 건 어때? 글 같은 건 그래, 쓰지 마. 안 써도 아무 상관없지.'




그렇게 닝 기적 거리며 이불 밖을 나와서 양말을 신는다. 나는 양말을 신으면 그래도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그까지가 힘든 거다. 이제는 별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서 나는 거의 매일 커피숍을 온다. 남편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봐줄 수 있다고 하면 여유시간이 30분이 생겨도 커피숍을 온다. 오면 왔다는 작은 성과가 쌓인다.

이렇게 힘들게 커피숍에 도착한다. 다행히 글을 쓰면서 언제까지고 엉덩이를 책상에 붙이고 있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음료를 더 시키고 맛있는 케이크를 더 먹으면 되니까.



사람들을 만나는 것 역시 만나고 나서는 크게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높은음을 곧잘 따라서 잘 낸다. 그럴듯하게 밝음을 표현해낸다. 나는 무기력한 사람이지 어두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또 반복이다.

아무리 집을 치워도 계속 각질이 쌓이고, 머리카락이 생기고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내게 무기력은 늘 함께하는 존재이다.



나 같은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한심한 내 하루와, 생각들을 공유하려고 한다.


‘와 이상하고 한심한 작가네.


이상하고 한심한 작가가 여기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것에는 이상하고 한심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상하고 한심한 글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을 지우기 위해 아이들을 씻기기 위해 나는 하루에도 수백 번 절실하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방바닥에 누워서. 그렇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내가 지금 양치할까. 조금 더 미룰까를 100번씩 고민하는 사이 많은 일들은 그럭저럭 그렇게 지나간다.


나를 매번 눕게 한 것도 무기력이지만 어쩌면 지금 내가 하루 세 번씩 커피숍을 가서 짬짬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무기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활용하면 무기력이 없는 사람보다 결국 많은 일을 해낼 수도 있다. 물론 스스로가 아주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겠지만.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작은 시도를 즐겨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check list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만만해질 때까지 잘게 쪼개 보자. 100개로 나누어도 그 첫 번째를 한다면 결국은 그 일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포기하기 전에 한 번만 쪼개 보자. 분명히 그 한걸음이 작은 성공을 연결해 줄 것이다.




(사진출처 무심한 듯 씩씩하게 김영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