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해도 힘을 낼 수없을 때

아무리 자책을 해도 힘이 어디선가 생기지는 않는다

by 김필영

학교에서 체력장을 할 때 늘 중간보다 잘했다. 1분 안에 윗몸일으키기를 30개 이상 했고 50m 달리기는 반에서 1, 2등이었고 오래 달리기도 10등 안에는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힘을 내는 것’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집에 누워있다가 보면 나처럼 누워있는 것들이 보인다. 머리카락, 회색 먼지, 그리고 정체 모를 흰 가루.



꽤 자주 그런 순간들이 찾아왔다. 결혼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술을 마셨고 결혼 후에는 아이에게 누워서 책을 읽어주었다. 게을러터져서 이 모양이라고 아무리 자책을 해도 나 자신이 바뀌지도, 힘이 어디선가 생기지도 않았다. 책을 좋아했지만 자기 편할 대로 쓴 것 같은 수필들은 와닿지 않았고 나 빼고 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 자기 계발서는 거부감마저 들었다.


결혼하기 전 더 심했지만 결혼하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오전부터 애들은 둘 다 집에 있고 남편은 새벽 출근이었다. 아이들을 보며 ‘역시 글 쓰는 게 육아보다 백번 낫다’는 걸 일곱 번쯤 떠올렸다. 아이들은 이유가 있었지만, 평소보다 강하게 혼났고 나는 계속 이불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어제 잠을 많이 못 잔 것도 아니었고 딱히 평소보다 무리한 것도 없었다. 생리하는 날이라서 평소보다 아랫배가 묵직하긴 했지만, 이 모든 상황을 생리라서라고 하기엔 내 생리통이 심하지도 않다.




아침은 도시락집에서 시켜 주었다. 먹이고 나니 힘이 좀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자전거를 태워줬다. 자전거를 처음 타본 아이는 버벅댔고 그걸 보고 있으니 또 화가 났다. 화만 난 게 아니라 화를 냈다. 이게 중요하다. 그리고 아이들과 다시 집으로 들어와서 둘째가 실수해서 엉덩이를 씻기고 첫째가 물을 쏟아서 윗옷을 다시 갈아입혔다. 겉옷과 갈아입힌 옷 소변 실수를 한 옷, 옷들이 금세 화장실 앞에 옷들이 쌓였다. 치우지 않고 아이들 손을 씻긴 뒤 또 이불로 들어갔다. 이불속에서 헛바퀴 질만 하는 나를 상상했다. 커피잔을 들어서 커피를 마셔야 하지만 실제로 커피잔을 들지도 못하고, 양치하고 옷을 입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를 못한다. 물론 설거지도 빨래도 머릿속으로는 하고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도저히 이렇게는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커피를 찾았지만, 집에 커피가 없었다. 커피와 빵을 배달시키려고 배달 앱을 켜는데 아침에 시킨 도시락집의 ‘리뷰를 써주세요’를 보는 순간 진짜 내가 병신같이 느껴졌다. 하루 두 번 배달시키는 엄마라니.

커피가 오고 난 뒤, 다행히 괜찮아졌다. 같이 시킨 딸기라 떼를 아이들에게 온화하게 나눠주고 옷들을 주워 담아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돌리고 아이들이 뿌려놓은 초코 가루를 정리했다. 뽈뽈하게 청소를 하고 있으니 남편이 왔다. 남편이 씻고 자유시간을 주어 여기서 이걸 쓰고 있다.


“필영 씨는 원래 체력이 타고나길 약하게 타고나셨어요. 아픈 데가 진짜 없어요? 맥박이 너무 약해요.”



얼마 전 한의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내고, 흘러가고 아이들은 크고 글은 쌓이고 배달 음식비도 쌓이고.


쓰다 보니 밖이 깜깜해졌다. 이 모양이지만 시간이 지나갔다.




check list

자책이 심해질 때에는 차선을 선택하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자. 차선으로 채우든 최선으로 채우든 시간이 지나간다. 밤이 되면 차선들이 모여 만든 내 모양의 하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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