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모양일까

내 모양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글을 쓴다.

by 김필영


씻기 귀찮았지만 샤워를 해야 힘이 생긴다는 것은 20대 술에 취한 밤을 연속해서 보낼 때 이미 깨달은 것이었다. 아침엔 샤워를 해야 한다. 뭐라도 먹어야 한다. 그리고 커피를 마셔야 한다. 이 세 가지를 해야 다른 자잘한 것, 옷 입기, 양치하기 같은 것들을 비교적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전 날 했던 가벼운 화장을 물로 씻어 내린다. 다 씻고 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몸을 닦을 생각을 하니 너무 귀찮다...’




머리에 물이 뚝뚝 떨어진 채로 몇 초간 가만히 있었다. 수건이 들어있는 장을 열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귀찮았다.

'몸을 닦는다 생각하지 말고 스무 번만 톡톡 두드려보자.'


머리를 열 번 톡톡톡, 몸을 수건으로 열 번 톡톡톡. 스무 번 몸을 닦는 것조차 이렇게 나 자신에게 잘게 쪼개서 물어다 줘야 한다. 어미새가 아이 새 먹이를 주듯이 말이다. 다 씻고 속옷을 입는데 웃음이 났다. 항상 겪지만 늘 황당하다. 이렇게 한심하다니. 왜 몸을 닦는 것도 ‘고민’ 해야 하는 건가. 힘을 내야 하나. 이렇게 더 작은 일로 쪼개야 하는가? 나는 왜 이모양인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화장대에 앉아서 내가 저번 주 이미 한 일에 대해 차분히 떠올려 보았다.



저번 주 고등학교와 성인 글쓰기 수업을 합쳐 삼십 개의 글을 첨삭해주었다. 마지막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위해 그 수업에 맞게 새로운 PPT를 준비했다. 5세, 6세인 우리 아이들에게 이틀에 한번 꼴로 수학을 자기 전 가르쳐 주었다. 금요일 빼고는 일주일 내내 아이들을 씻겼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을 차려주었다.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남편과 마지막 수업을 기념해서 식탁에서 사이좋게 무알콜 맥주와 오징어를 먹었다.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그리고 '클루지'를 읽었다. 무엇보다 저번 주, 세바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찍었다. 연습을 위해 인터뷰어의 얼굴을 그려서(거의 눈 코 입만 간신히 그린 수준) 호텔 베개에 붙이고 나름 휴대폰 카메라와 마이크까지 차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3-4번 반복하는 사이 해가 졌다. 인터뷰 당일 아침에도 목이 잠긴 채로 그 그림의 인터뷰어를 보고 연습을 더했다. 그 이후 브런치에 글을 하나 발행했다.




무기력 해질 때에는 내가 이미 해치운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 내가 내 마음의 소리처럼 놀고먹고 게으름뱅이에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에 반박할 근거가 생긴다. '나는 그러지 않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아아들과 남편을 나보다 더 잘 챙기는 사람들이 사실 부럽다. 그러나 나 역시 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메시지를 열심히 준비했고 준비된 자리에서 어깨에 힘을 빼고 배에 힘을 주고 내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글쓰기 수업을 통해 사람들의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그들에게 웃음과 필요한 정보를 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많이 했다. 어젯밤, 울산에는 태풍이 왔는데 새벽 동안 그 태풍이 지나갔다. 잔다고 나는 창문의 흔들림조차 느끼지 못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커피숍을 가는 길, 길가에는 나뭇잎이 가득하다. 바람에 휫날려 떨어졌을 나뭇잎을 보고 생각한다.


'내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톡톡, 톡톡톡. 수건으로 몸을 닦는 것도 힘들어하지만 결국 오늘도 커피숍에 도착했다. 어제 몇 페이지를 채 남겨두지 않고 읽다가 잠들었던 책을 펼쳤다. 그리고 읽었다. 노트북을 켜서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무기력을 바라보며 쓴다. 글을 쓰며 깨닫는다.



‘너는 가끔 나보다 더 크게 덩치를 키우는구나. 하지만 그런다고 네가 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나는 무기력한 사람이지만 무기력이 내 전부는 아니다. 느리지만 느림이 내 전부는 아니다. 확실히 게으르기도 하지만 게으름이 내 전부는 아니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이미 해치운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엉망진창에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될 사람에서 그냥 조금 무기력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무기력은 내 안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감정일 뿐이다.




Chack list

다이어리를 펼쳐 지난 일정을 살펴보자. 이미 내가 이룬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자.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도 착각이지만 내가 무쓸모 하다는 것도 생각+생각+생각이 만들어낸 오류이다. 어떤가.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해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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