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보고 작가 됐을까
내가 유심히 본 것들. 선명한 것들.
20대의 어느 때.
그때의 나는 때때로 즐거웠다. 맛있는 식당을 열 곳쯤 알고 있었고 매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돈 정도는 있었다. 출근할 때 입을 옷이 세 벌 정도는 있었고 화장을 하면 안 한 얼굴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점이 많았지만 피부가 좋은 편이었고 매일같이 밥도 먹지 않고 술을 마셨는데도 말짱했다. 무엇보다 일하는 걸 좋아했다.
내가 봤던 것들을 떠올려본다. 물론 거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도 있다. 그럼에도 스무 살, 롯데시네마에서 만난 친구와 '치킨 집에서 보낸 밤'에 대해 기억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목에 감긴 스카프와, 핑크색 기다건과 통이 큰 청바지, 그리고 단화. 그리고 그의 네이비색 모자와, 시간에 지남에 따라 자랐던 수염. 치킨 집에서 책 이야기를 하다가 아침이 되고 각자의 버스를 타고 헤어졌던 그날.
햇빛. 햇빛이 반사된 태화강. 그리고 왠지 활기 있어 보이는 사람들.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그들을 뚫어지게 보다가, 그들을 이해하려다가 작가가 되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글을 쓸 수 없다. 아니, 글을 쓸 수야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잘 읽히는 글을 쓸 수는 없다.
누군가의 머리핀을, 피부를, 바지를 그리고 얼굴의 주름을 계속 볼 수 있다면.
문학적 재능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닮아있다. 그냥 어떻게 살아도 그런 속도로 걷고 입고 말하듯이, 그런 속도로 글은 써진다. 사는 것의 정답은 없다. 많은 경우 그 말은 통하고 또 위로가 된다. 속도가 헷갈릴 때면 글을 쓴다. 글 안에서 일정한 리듬에 맞춰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괜찮아진다.
'뭐 보고 작가가 됐을까.'
하나씩 떠올려본다. 내가 차렸던 휴대폰 가게에 왔던 손님,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함께 물을 떴던 사람들. 아파트를 팔 때 비슷비슷한 정장을 입고 있었던 사람들. 정사각형의 습기를 머금고 있던 반지하 방, 그리고 그 옆 편의점. 그리고 걸어가면 나왔던 코인 세탁소.
비 오는 날 먹었던 부침개, 먹고 난 뒤 집으로 가던 길.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던 날.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걷던 길. 그리고 혼자 서 있던 길. 이런 길들을 지나 올려다보면 보이는 불이 꺼진 집. 내방. 내방까지 들어가는 길. 순간은 언제까지 흐르지 않고 사는 것은 금방 흘러서 지나가버린다. 언제까지고 기억에 남는 일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내가 작가가 될 수 있게 해 준, 이 속도로 살 수 있게 해 준 내가 본 것들. 글을 쓰면서 내게 이미 중요한 일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