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친 집 앞 유령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 사람이 되어 내 할 일을 한다

by 김필영

-프롤로그


새벽녘 바다.

바다가 슬퍼 보였던 것은 언제까지고 그 바다를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뭐야. 옷이 왜 이렇게 커.”


길이도 길이지만 품이 커서 놀랐다. 입고 바다를 걷다 보니 내가 그때 만났던 그가 울고 있었다. 나는 그의 정장을 입고, 그는 울고.

그랬지만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다음은 없었다. 그 상황에 맞는 그다음은 없었다.

그다음이 없는 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바다는 실제보다 더 커져서 내 눈에 펼쳐지기도 했고 선선하고 시원한 날씨였지만 비가 내리는 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곳에서 했던 대화들. 파도 소리를 함께 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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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바다에서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 있었다. 그때 그에게 누군가의 죽음을 들었다. 그 바다도 듣고, 나도 듣고. 죽음을 빼더라도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듣고 있는 게 좋았다. 그래도 언제까지고 들을 수는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그럴 수 있을까. 끊임없이 바다 앞에서 그렇게 있을 수 있을까. 그 거리에 새벽에 퍼졌던 말들. 말들이 모두 진심이었다고 해도 시간이 흐른 진심은 힘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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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30분, 눈을 떴다. 원래 오늘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춘 시간은 5시 55분. 아, 피곤하다는 생각보다 20분을 좀 더 집중해서 자야지 라는 마음으로 눈을 감다가 6시에 일어났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을 듣는 플로쌤이 새벽 줌을 열어주셔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이렇게 살았더라면 정말 어땠을까.’


아마도 정말 경찰이 되었거나 뭐라도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다니.

지금의 나는 잠은 많이 자지만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언제 어디나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노트북과 관련 책 3권 정도로 가방을 채우고 짬짬이 남편이 아이를 봐준다고 할 때마다 커피숍을 간다. 애들 병원 진료를 기다리면서도 수업 관련 자료나 책을 읽는다.

자 이제 생각을 그만하자는 생각을 또 하며 물을 챙겨와 자리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켜니 화면 보호 모드가 되어있었다.

새벽녘 바다사진이었다. 한참을 쳐다보았다.


'아마 정말 처음부터 이렇게 계획에 맞춰 살았더라면 나는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는 것을, 많은 것들은 아침이 되면 사라진 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겠지.'


절정이 지나면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아무리 그 새벽 진심이었어도 우리는 그 새벽을 놓아주고 아침이 되면 겨우, 일상적인 얘기들을 하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아침에는 그날의 일과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슬픔은 없다. 자체 생산이 아니고서야 슬픔 역시 지나가버린다.


화면 보호 모드를 끄고 글을 쓴다. 아직 7시 18분이다. 지금은 현실이고, 현실에 살지 않았던 과거 덕분에 지금은 현실에 살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없음을 슬퍼했지만 이제는 그 모든 끝들을 좀 인정하게 되었다.

바보같이 헤어지고 난 뒤에 3년이나, 만났던 남자 친구의 아파트를 배회하는 일은 없다. 그건 유령이나 하는 일이고 나는 이제 내가 해야 할 법한 일들을 한다. 유령이 할 일은 유령에게 맡겨두고 말이다.

과거에게 도움을 받으며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있다.


끝을 인정하고 앞 뒤가 이어지는 현실의 일들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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