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서인데 소설이라니요-2

2화 미래체험을 하다

by 김필영


00 베스트샵 안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아 저 커피포트 좀 보려고요.”


커피포트는 2층에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매장 중간에 진열된 커피포트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다 거기서 거기였다. 검은색, 흰색 커피포트를 보는 사이 왼쪽 끄트머리 쪽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웅성웅성하는 걸 발견했다. 김치냉장고가 있는 곳이었다.


‘저기 왜 저렇게 사람이 많은 거지? 세일하는 건가?’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은 가지 않지만, 이상하게 그쪽으로 발걸음이 향해졌다. 몇 발자국 앞으로 가서 왼쪽으로 꺾으니 사람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나도 고개를 빼꼼히 들어 뭐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흔히 전자매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획 특가나, 오픈 할인, 혹은 초특가행사 대신에 미래체험이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미래체험? 저게 뭐래... 가전제품이 요샌 별게 다 나오네.'


누군가가 미래체험이라는 글씨 밑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의자는 평범한 안마의자처럼 생겼고 누워있는 사람은 마치 영화관람을 하는 것처럼 검은 안경을 쓰고 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다. 그 사람은 몸을 양옆으로 흔들거렸고 입고 있던 하얀 셔츠가 조금 올라가 있었다.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시간이 5분 정도 지나자 안내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자, 그럼 여기까지 할게요. 이제 미래체험을 종료하도록 할게요. 45번 고객님께서는 안경 제자리에 놔두시

고요. 귀에 꽂은 것도 함께 놓아둬 주세요.”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살짝 올라갔던 셔츠를 내리고 뻣뻣하게 안경과 귀에 꽂은 이어폰을 바구니 같은 곳에 담았다.

“자, 미래 체험 하신 40번 고객님. 본인의 미래는 뭐였나요?”



그 사람은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한 글자씩 천천히 말했다.



“제가, 그러니까 시골에서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농사를 짓고 있더라고요. 그게 제 평생소원이기는 한데 전 회사가 본사.. 가 서울에 있어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제가.. 소도 키우고 있더라고요. 근데 아까 그 소가 갑자기 저를 쫓아와

왔고..”



순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게에 울려 퍼졌다. 그는 웃음과 상관없다는 듯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오늘은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마무리 기념으로 추첨으로 한 명을 뽑도록 할게요. 뽑힌 분이 안 하시면 그다음 분에게 기회 넘길게요. 자……. 그럼……. 65번! “



순간 번호가 익숙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쓱 코트에 손을 넣어서 구겼던 종이를 폈다. 65번.

내가 65번이었다. 무심결에 받은 게 이게 그러니까 미래체험 추첨번호였다고? 입이 막힌 듯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손을 들었다. 안내자가 나를 보았다.


“아, 저기. 저 검은색 코트 입으신 분, 네네 저분이 65번이시군요. 앞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엉거주춤 걸어서 앞으로 나갔다. 열 걸음 거리였지만 의자에 앉을까, 다른 사람에게 넘길까 고민을 서른여섯 번 정도는 한 것 같다. 그런데 의자에 가까워지니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대고 의자에 앉았다.

“자, 그럼 안경 끼시고, 네 귀에 꽂으시고요. 자, 지금부터 눈앞에 어떤 화면이 펼쳐질 거예요. 그게 본인의 모습일 수도 있고 본인과 가장 가까운 누군가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그 안에는 놀랍게도 정장을 입은 내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니었다. 나이지만 내가 아니었다.

내가 늘 가던 공간인 노래방, 혹은 디브이디방, 혹은 영화관. 그것도 아니면 일하는 분양사무소가 아니었다.

그녀는 주황색 로고가 적힌 깜깜한 스튜디오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다. 하얀색 셔츠와 검정 바지. 그리고 깔끔한 매무새. 지금보다 늙은 얼굴. 이게 뭐지? 현실보다 조금 천천히 그녀가 움직이는 모습이 내 눈앞에 보였다. 그녀가 웃으며 강연장 밑으로 내려갔다.


“아, 저 너무 못했죠?”

“아니에요. 필영 님 너무 잘하셨어요. 저희 모두 다 정말 발음 좋다고 말씀하시는 게 너무 잘 들린다고 그 얘기했었어요.”

“어우. 그럼 다행이에요. 제가 방송에 누가 되면 안 되잖아요.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진한 화장. 움푹 팬 볼. 더 많아진 주름. 그녀가 내가 맞다면 지금보다 확실히 그녀는 더 늙어있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건 확실했다. 적어도 지금의 나처럼 매일 술을 마시고, 돈을 못 벌고, 아파트를 파는 일에 목을 매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확신에 찬 눈동자를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빛났다. 뭔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



“자, 이제 눈을 감으시고요. 천천히 안경을 벗고요. 이어폰도 빼세요.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셔서 옆에 통에다가 안경과 이어폰을 넣으시면 됩니다. 65번 님. 간단히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네. 제 미래는 그러니까, 강연자였어요. 강연자이긴 한데 뭘 강연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어요.”

침을 꼴깍 삼키며 나 역시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뒤통수에서 판매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지금 이 미래체험기는 저희 D사의 단독 기술력으로 만든 기기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구매할 수 없다는 점 알려드리고요. 100% 맞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미래가 일치했다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첫 구매 시 가스레인지를 선물로 드리고요. 36개월 할부로 구매가 가능합니다. 집에 놔두시면 놀러 오는 지인들마다 다 이용할 수 있겠죠? 정말 다시는 없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요. 오늘부터 딱 10일 간만 700만 원에서 할인된 금액 450만 원으로 판매를 진행합니다. 결제하실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전자매장 문을 열고 나왔다. 커피포트는 내일 사도 된다. 휴대폰을 열어서 미래체험을 검색해 보았다. 2023년 1월 출시. 그러니까 아직 이게 정말 나의 미래인지 맞췄다는 사람의 글은 찾아볼 수 없었고 맘카페, 그리고 부동산카페에서는 현재의 나와 너무 달랐다고 믿을 수 없다는 글만 수두룩했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네. 그래. 내가 설마.. ’


저녁 8시가 되었다. 서둘러 다시 집으로 갔다. 곰팡이가 가득한 집에는 빨아야 할 빨래와 빨아진 빨래가 비슷한 형태로 뭉쳐져 있었다. 빨아진 빨래를 개키며 생각했다.


‘이렇게 살다가 점점 희미해져서 마치 속이 다 보이는 플라스틱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빨래를 다 개키고 방바닥에 누워 휴대폰을 보다 보니 어느덧 자정이 되었다. 이렇게 사는데 내가 무슨.. 아까 보았던 미래체험의 나를 한번 더 떠올려보았다. 고개를 저었다.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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