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아이에게 그 말을 들었었을 때는 그다지 웃기지 않았다. 나 역시(?) 그 정도 닦는 것 같기도 하고 보통 그 정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에. 그런데 이어지는 그다음 말.
“근데 휴지에 똥이 묻어도 무조건 4번만 닦아!”
어? 설거지를 하다 말고 아이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럼 안될 텐데 하는 생각이 첫 번째 들었고 두 번째 든 생각은 아마도 그 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4번은 반드시 닦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 아이가 하는 행동이 웃기면서도 묘하게 그림처럼 그려졌다. 아이는 진짜 중요한 것을 잊고 (똥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 아마도 부모님의 '4번'에만 꽂힌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 들어 계속 남편과 선암호수공원을 걷고 있는데 요즘 매일 하고 있는 산책의 의미가 마치 똥을 닦는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걸 왜 하는 거지, 진짜 중요한 가치가 내게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는 생각의 길을 걷고 있다.
걷다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단상의 주인공은 내가 어디서 스치듯 만났던 사람이다. 혹은 몇 번 만났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나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일했던 휴대폰 가게에 지금은 다른 직원이 있다. 내가 있었던 때는 12년 전이고, 그 가게에는 지금 예전에 그 사모님이 그대로 있어서 가끔 휴대폰을 바꾸러 가거나 놀러를 가는데 그때마다 한 직원과 마주한다. 그 직원은 말수가 적고 약간 무심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 직원이 일을 할 때 보면 가식이 전혀 없는데 진정으로 고객을 위해주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단골들이 종종 들러서 이것저것 귀찮게 해도 웃으면서 대처한다. 약간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썩소 비슷한 미소를 짓지만 그러면서도 정말 다 해준다. 나 역시 그때 명의변경이었을까, 하는데 서류가 없어서 노트북으로 그 자리에서 서류를 땐다고 한 시간이 넘게 우왕좌왕했는데 전혀 눈치를 주지 않고 그렇다고 과한 관심도 주지 않았다. 아주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직원이었다. 물론 나는 그 직원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렇게 스치듯 봤던 그 모습이 동영상처럼 내 머리에 스친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의 좋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 머릿속에서 좋은 사람들이라는 폴더에 저장해 놓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기만 하면 더블클릭이 된다, 나도 믿을 수 없지만 정말로 그렇다.
그러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처리해야 해. 이 말을 속으로 구호처럼 되뇌며 공원 안에 있는 산을 오른다.
중요한 것은 헉헉, 중요하게 헉헉 처리하자 헉헉
이런 식이다. 물론 속으로..
그러다 보면 내가 의도한 바도 아닌데도 중요한 것에 마음을 쏟게 되고 덜 중요한 것에서 잠시 뒷짐을 지는 용기도 생기게 된다. 특히나 지구가 두쪽 나는 일이 아니면 아침운동 때는 휴대폰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 중 1시간은 온전히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을 누리는 것은 내게 생각보다 큰 웅장함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기에.
그렇다. 내가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내 옆에 소중한 사람들. 가족들과 지금을 함께 하는 것. 그것을 되뇌며 산책을 마무리한다.
틈틈이 원고 교정에 대한 압박감 9월 8일이 내일 당장 올 것 같은 그런 불안함, 그리고 유튜브 영상 다음 건 뭘 찍을까 하는 설렘 같은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