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17개월,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결혼한 3년 동안 나는 2번 배를 째서 아기를 낳았다.
똑같은 병원에 2번 입원했고 똑같은 간호사와 의사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초음파를 보는 것을 합쳐서 대략 20개월 정도 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8개월이었던 첫째가 출산할 때는 17개월 아기가 되어 병실을 뛰어다녔다.
병원에서 2.9킬로로 태어난 둘째가 내 눈에는 굉장히 커 보였다.
모두가 작아서 귀엽다고 해도 와 닿지 않았다. 때 되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고 울면 우유를 타 줘야 하고 계속 위험한 행동을 하는지 살펴봐야 하고 잘 때는 새벽 분유를 타 줘야 한다. 몽롱한 정신으로 분유를 타서 먹이다 보면 둘째의 몸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해도 해도 끝없이 해줘야 하는 존재였다.
애가 둘이 생기고 남편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엄마가 반찬을 자주 해서 갖다 준다.
잊어버리고 있으면 양말이 없어서 그제야 빨래를 돌리고 꽉꽉 채운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고 나면 그것도 바로 개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음 빨래를 돌릴 때가 되어서야 서둘러서 갠다.
집안일은 자꾸만 늘어났다. 게다가 둘째를 낳고 나서는 하고 싶은 것도 많이 생겨서 애를 안고 글쓰기 모임, 강사 수업을 갔고 아기띠를 하고 부동산에 가서 땅을 보고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그렇게 다닐수록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싶어 졌다. 그렇지만 9킬로 10킬로 나가는 애를 아기띠를 안고 다닌 날에는 집에 와서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날들이 쌓여갔다.
남편이 둘째는 3살이 되는 3월에 회사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근처에 사는 친정엄마에게 말했다.
“이 어린것을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엄마. 나도 힘들어. 그럼 엄마가 키워.”
“왜 내가 키우니. 니 자식인데 네가 키워야지. 그리고 니 앤 데 뭐가 힘드니?”
82년생 영화를 보고 난 뒤 엘리베이터에서 옆사람이 얘기하던 것이 생각났다.
“도대체 뭐가 힘들다는 건지 모르겠더라. 공유가 양복도 안 벗고 목욕을 씻겨주는데. 게다가 애가 한 명이고 그 애는 또 왜 그렇게 순하냐. 똥 싼 거 말고 걔가 엄마 힘들게 한 게 뭐가 있어.”
내년 3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한 뒤부터 아이가 원래의 크기로 느껴졌다.
폭 안길 때면 아 이렇게 작은 아기였구나. 실감이 난다.
더 작았을 때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나에게 있어 둘째의 가장 작은 크기는 지금이다.
고작 17개월짜리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주변에서 나를 나무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씩 떠올리며 생각해본다.
나만 어른이 되지 못하고 다들 어른이 된 것 같다.
친정엄마는 지금 나의 둘째보다도 더 내가 어릴 때 옆집 아줌마에게 돈을 주고 맡겼었다.
엄마도 그때는 어른이 되지 못한 애였을까.
우리는 남 일에는 어른 인척 한다.
나는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애를 키워보니 애는 원래 부모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러니 내가 이런 것은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