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가 아이 둘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첫째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오니 5시였다. 폐 끼치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친구는 어린이집 갔다 와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세균이 있을 것 같다며 애들을 씻겨서 5시 반쯤 우리 집에 왔다.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그 아이 두 명이 반가웠다.
“채아랑 민아 어서 와. 오느라 고생했지.”
미키 신발을 같이 신고 온 6살 첫째와 3살 둘째는 나란히 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어쩌면 남의 애들은 이리도 이쁜 것일까.
친구 집 애 둘과 우리 애 둘을 인사시켰다.
낯을 가리는 우리 첫째와 남자아이 같은 친구 집 첫째는 나이도 2살 차이 났지만 성향이 달라 어울리지 못했다.
우리 아이는 계속 앉아서 책을 읽었고 친구 집 첫째는 오자마자 안방 거실 할 것 없이 자기 집처럼 누비고 다녔다. 둘째들은 상대적으로 나이도 같고 성향도 비슷해서 같이 놀지는 않았어도 둘 다 계속 주방놀이 근처에 있었다.
애들이 놀고 있을 때 나는 치킨집에서 치킨과 피자를 시켰다. 애 넷을 먹였다.
먹이면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계속되는 아이들의 요구사항에 맞춰주느라 그것은 불가능했다. 아이들이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친구는 첫마디를 꺼냈다.
“나, 둘째 어린이집 가면 사업하려고. 남편이 하는 건데 이번에 나도 같이 하기로 했거든.”
나는 그 이야기를 너무나 듣고 싶었다. 계획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들어주고 싶었는데 그때쯤 친구의 첫째 아이가 너무 뛰었다.
평소 간이 콩알만 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집에서 뛰지 못하게 하는 편이다.
"아니야. 뛰는 건 안돼. 살금살금 걸어야 돼. 따라 해 봐." 하면서 애들에게 몸소 살금살금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것도 안되면 무서운 엄마 모드로 들어간다.
“뛰지 마! 밑에 집 아찌 올라와서 이 놈 한다!”
하면서 혼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친구의 첫째에게 짜증을 내었다.
“집에서 뛰면 안 돼요. 밑에 집 아찌 올라와. 뛰지 마.”
금방 풀이 죽은 아이를 봤을 때 나는 내 잘못을 깨달았다.
“이모가, 간이 콩알만 해서 그래. 이모도 밑에 집 아찌가 너무 무섭거든. 채아야. 이모집 소파가 엄청 싼 거거든. 저기서는 마음껏 뛰어도 돼.”
그 아이는 끄덕끄덕하며 소파에서 뛰어노는가 싶더니 금방 거실과 안방을 뛰어다녔다.
그때 친구가 중재에 나섰다.
“이모집 와서 안방에 들어가지 말랬지! 그리고 뛰지 마!”
또다시 아이들은 살금살금 걷기 시작했고 1분도 안되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결국 4명에게 나는 뽀로로를 틀어주었다.
아이들은 사이좋게 집중해서 티브이를 보았다.
한숨 돌린 나와 친구는 애들에게 주고 남은 치킨을 뜯어먹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니까.......”
친구의 말을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쪼르르 앉아있는 4명을 보았다.
‘집에서는 뛰지 않는 거야.’
정말 집에서는 뛰면 안 되는 걸까.
친구의 성격 좋은 첫째 아이는 내가 짜증 낸 것은 잊어버린듯한 표정으로 뽀로로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그런 것이 미안했다.
뛰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건 확실하다. 밑에 집에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1층에 가거나 주택에 가면 된다. 그리고 맘껏 뛰어놀게 하면 된다.
정답은 알지만 그것만이 정말 답인 걸까.
결국 나는 그날 친구의 사업 스토리를 모두 듣지 못했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지어진 걸까. 조금만 발을 헛딧여도 밑에 집에서 큰소리가 나게 지어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