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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Jan 17. 2020

맘 카페를 탈퇴하시겠습니까?

 첫째가 4개월이 되었을 때 지역 맘 카페에 가입했다. 거기서 가입인사를 먼저 하고 소소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아기가 뒤집기를 하면서 계속 깨요.’라는 첫 글에 육아 선배님들이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었다.

엄마인 친구가 많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맘 카페에 빠져들게 되었다. 아무리 소소한 것을 이야기해도 댓글이 달렸다. 그들은 힘내라는 말을 해주었고 웃음을 달아주었다. 공감해요라고 해주었다.

아기가 잠들고 나면 화면 밝기를 최대한 줄여서 카페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시댁 이야기와 남편의 바람, 혹은 술버릇이라던지 남편이 상의하지 않고 대출을 받아서 주식을 했다는 내용이 많았다.

새벽 1시가 넘도록 맘 카페를 들락날락했다.

질문 올리기가 익숙해지자 중고물품을 사러 다니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도 10만 원이 훌쩍 넘는 쏘서를 2만 원에 구매하게 되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저 멀리까지 차를 타고 가서 싣고 올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난 엄청 부지런한 엄마야. 게다가 엄청 돈을 아끼는 엄마야.’ 누가 그렇게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둘째가 생겨서 아기 물건을 파는 것은 텀이 조금 생겼지만 내 무스탕을 싼 가격에 팔아서 아이의 과자값 정도를 벌기도 했다.

그렇게 애정 했던 맘 카페 활동이 둘째를 낳고 끝이 났다.

첫째를 보내려고 했던 어린이집이 3살부터 받아주어서 3월 입학기까지 본의 아니게 6개월의 틈이 발생했다. 그래서 그때 동안 내가 두 아이를 집에서 보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 둘과 보내는 일상은 끔찍했다. 무엇보다 굼뜬 나는 자주 멍해졌다.

내가 지금 뭐부터 해야 하는 걸까. 기저귀 갈기, 분유 먹이기, 첫째 밥 먹이기 같은 것들은 뒤로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주로 집안일과 내 샤워가 뒤로 밀려났다.

집은 난장판에 나는 머리를 하루에 수십 번 긁고 자기 전에야 깨달았다.

 '아 오늘이 안 씻은 지 3일째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할걸 다 했어하는 날은 정말로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맘 카페 활동을 못했다. 드림을 받으러 갈 시간도 없었고 누군가의 글에 공감을 해줄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첫째 아이가 드디어 어린이집에 갔다. 오래간만에 나는 맘 카페에 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연년생을 계획하는 엄마에게 최대한 현실적이면서도 위로가 되는 댓글을 달아주었고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람에게는 나도 그런 적이 있어서 근처 지구대로 신고하면 찾을 수도 있다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 외에도 소소하면서도 힘이 나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서 감사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내 댓글이 끝인 경우도 있었다.

요즘에는 맘 카페의 안 좋은 점에 대해서 일부 언론에서 마녀사냥이 심하다는 둥의 방송이 나오기도 했지만 내가 직접 겪고 느낀 맘 카페는 정말 공감과 배려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문득 누군가 자유시간에 혼술을 즐긴다는 글을 보며 순간 스크롤 내리는 걸 멈추고 휴대폰 화면을 껐다.

공감과 배려 사이에, 그 훈훈한 잔치 속에 나는 있는 걸까. 저 사람은 혼술이라도 하지만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맘 카페라는 공간은 좋지만 나만의 시간에 이것만 하며 보낼 만큼 이 일이 나에게 중요한 일일까.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나는 그때부터 자유시간에 맘 카페를 포기하고 일기를 썼다. 오직 나의 이야기만으로 일기장을 채웠다. 잠든 아이가 방문을 열기만 하면 깨는 날에는 어두운 방에서 수유등만 켜놓고 일기를 썼다.

아무도 관심이 없고 댓글도 달리지 않지만 일기를 쓰자 나 스스로에게 관심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포기했던 꿈은 뭐였는지 돈 때문에 했던 일이 아니면 나는 뭘 하겠는가에 대해 썼다.

 그리고 오늘은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변한 것 같아 슬펐다. 같은 내용의 글도 썼다.

닭갈비를 샀는데 맛있었지만 17000원이나 해서 과연 이걸 또 사야 할지 고민이 된다.라는 내용도 썼다. 나는 그저 뭐든지 쓸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이었다.

심지어 어린이집 적응기 때 한 시간만 떨어졌다가 다시 와주세요 라는 선생님의 말에 다른 엄마들과 담소를 나누지 않고 근처 작은 도서관에 갔다. 거기서도 글을 썼다.

가끔은 아직도 맘 카페에 들어간다.

 '아이의 눈에서 눈곱이 계속 나와요. 이거 뭔가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맘 카페는 들어가지 않는다.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더욱더 필요하다. 엄마가 되자 오히려 그것이 분명해졌다.

그래 이게 나였지. 나의 취향, 나의 시간은 맘 카페 밖에서 생겨났다.     

탈퇴하기 버튼을 바라만 보다가 한번 눌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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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확인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지만 가지고 있는 노란색 일기장에서 나는 내 길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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