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일 안 하는 여자는 싫어해요."
결혼을 준비하며 들은 말.
그 해 여름에 남편과 결혼을 약속하고 친척들에게 한 명씩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워낙 갑자기 하는 결혼이라 인사 역시 부랴부랴 이뤄졌다. 서울에 사는 친척은 서울여행을 가서 남편 쪽과 내쪽 둘 다 인사를 드리고 내려오기도 했다.
남편 쪽의 친척들은 나에게 너무나 잘 대해 주었다. 이리저리 재는 눈빛이 없었다. 딱 부담스럽지도 않게 “잠은 그럼 다른 데서 자고 아침은 우리가 해줄게.”라고 하시며 남편과 내가 좋아하던 햄 반찬을 해주었던 이모님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누군가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먹고 싶어 하는 걸 잘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결심도 했다.
아무튼 나는 그 과정을 소화하며 일하고 있던 휴대폰 가게를 그만뒀다. 어차피 아는 사람의 오픈을 도와주는 수준이었던지라 미련은 없었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거의 마지막이 되었을 무렵 남편의 친척 중에서 좋은 회사에 다니는 분이 계셨다. 그분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분의 직장이 우리 집 근처라서 우리는 가볍게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그녀를 만났다.
남편과는 친한 사이라 이런저런 장난을 치는 사이 우리는 손님방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녀는 살이 쪄서 걱정이라는 둥 지금도 다이어트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직장은 다녀요?”
“아뇨. 저 그만뒀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 안 하는 여자는 싫어해요.”
“음...... 아...... 네.”
나는 그때 마땅히 할만한 대답을 못 찾았다.
“아가씨예요 아줌마예요?”
폰 가게에서 폰을 사러 들어왔던 아저씨들의 짓궂은 농담에도 나는 유리창을 닦으며
“딱 보면 모르겠어요? 저 애가 둘인데?”
하고 맞받아쳤는데 저 말에는 정말로 어떤 대답을 해야 옳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오후 4시쯤 집에 왔다. 엄마에게 오늘 그 친척을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며 그 말을 들은 것도 말해주었다.
엄마는 그때 반나절 정도 너무 서운하다고 어떻게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설거지를 하며 툴툴거렸다. 엄마는 '싫어해'에 꽂힌 것 같았다. 사람을 면전에 두고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정상이냐고 했다. 나는 엄마를 설득시켰다.
“엄마 자주 볼 사람도 아니고 괜찮아. 상관없어. 우리 어머님 아버님은 너무 좋은 분이시고 남편 역시 진짜 좋은 사람이야. 그것만 볼 거야, 결혼할래. 결혼시켜줘.”
엄마는 결국 내 의지가 워낙 확고하기도 하고 뭐 현실적으로 돈이나 그런 것에 연관되는 일도 아니었기에 결혼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했던 남편의 먼 친척은 정말로 결혼 이후 마트에서 한번 우연히 마주쳤을 뿐 보지 못했다.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해마다 아이들 옷을 사서 우리 집으로 보내주고 또 출산했을 때 돈도 보내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말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먼 친척의 그녀는 나에게 분에 넘치게 잘해주신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혹시 모를 일이다. 친구의 험담 속 자주 등장하는 802호 아줌마도 그 아줌마만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친구의 아파트 802호 아줌마는 늘 친구의 차를 얻어 탄다고 한다.)
나는 그래서 아무리 개인적으로 라는 말을 붙이더라도 남의 말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들은 당사자는 4년이 지나도 이렇게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나는 그녀처럼 직장에서 높이 올라가지 못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일자리를 바꾸기도 했고 들어가기 힘든 그런 일자리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모르는 것은 나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지, 결혼을 하며 남편의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전까지 늘 내가 쓰는 소비에 책임을 졌다. 3년 고시생 생활 역시 휴대폰 가게를 차려서 번 돈으로 했다.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대답을 나는 결혼 후 4년이 지나서야, 아이들 양말 짝을 찾다가 생각났다.
“저는 일했던 여자이고 제 공과금은 제가 직접 냈던 사람입니다. 저 양말 한 짝까지 제가 샀어요.”
지금 나는 결국 연년생을 키우고 있는 일 안 하는 여자이지만 남 얘기는 조금 조심해서 하는 것은 어떨까.
결국 우리가 모든 걸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