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필영 May 28. 2020

나만의 삼계탕을 만들어볼까

 ‘띠띠띠띠띠’



누군가가 우리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하면서 들어오면 남편이고 “다인아.” 하고 첫째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면 시어머니이다. 지금처럼 아무 말 없이 들어오면 친정엄마다.

엄마는 무겁게 또 뭘 만들어서 왔다.

 “이게 뭐야?”

 “이거 삼계탕 끓여왔다. 애들이랑 같이 먹어라.”

아이들과 남편을 주려고 국자로 삼계탕을 푹 뜨니 고기 말고 다른 건더기가 엄청 많았다.

 “아 집에 마늘이 없어서 양파로 만들었다.”

엄마의 요리는 예전부터 친정 가족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일단 요리를 완성한다. 고추장 대신 간장을 사용하기도 하고 마늘 대신 양파를 사용하기도 해서 맛이 엄청 없어지는 것도 있다. 밥에 콩나물을 넣는다더니 콩나물이 없다며 치즈와 호두를 넣은 적도 있다. 본연의 맛을 아예 잃어버린 음식앞에서도 엄마는 “퓨전”이라는 한마디로 의연하게 먼저 젓가락을 든다. 다행히 오늘 양파로 끓인 삼계탕에서는 달달한 맛이 났다. 나쁘지 않았다. 이게 삼계탕이 맞을까 하는 의심은 들지만 어쨌든 닭이 한 마리 빠져있으니 아마 삼계탕 일것이다.

달콤한 삼계탕을 남편도 아이들도 다 잘 먹었다. 우리는 모두 배부르게 밥을 먹었다.

모처럼 이발소 휴무에 남편 휴무가 겹쳤다. 총 3명의 지원군이 생겨서 나는 아주 당당하게 커피숍에 갔다온다고 얘기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파스쿠찌에 도착해서 커피를 시키고 늘 가던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거기서 컴퓨터를 켰다. 오늘같이 완벽하게 시간이 주어지는 날에 하필 마땅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뭐에 대해서 쓰지?’ 생각하는데 한 시간이 그냥 흘렀다. 그사이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긴 했지만 글은 한자도 못썻다. 나는 글을 쓰러 간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똥싸러 갔다 온다고 해놓고 내가 똥을 싸든 안 싸든 상대방은 관심 없겠지만 나로서는 똥을 싸는 편이 편한 것이다. 한시간 반쯤 지나자 마음이 점점 더 초조해졌다. 이러다가 오늘 자유시간을 그냥 날려 버리는 것 아닐까.     

 자리에 앉은 자세로 어깨를 한껏 올렸다가 다시 툭 떨어뜨려보았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니 차도에는 차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다.

 “흰색 흰색 흰색......”

순싯간에 10대나 흰색차만 지나갔다. 신기했다.     


 ‘내가 쳐다보지 않더라도 옆에 차도에서는 차가 지나다닐 것이다. 그렇지만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흰색차가 열 번이나 지나가는걸 보지는 못했겠지.’




     

요즘은 육아를 하면서 매일 커피숍에 오고 있다.

흰 차들이 차도를 채우는 관경을 보고있으니 힘이 생겼다. 파스꾸찌 문을 열고 다시 집으로 갔다.      

글을 쓸 때 나에게 없는 재료는 많지만 아이는 두명 있다. 독박육아 며칠만 하면 소재가 우두두두 떨어진다. 요즘 오히려 너무 글만 쓴거 아닐까. 아이들과 볼을 비비면서 육아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글 쓸 소재는 어떻게든 생길 것이다. 거기서 주섬주섬 주워서 이것저것을 쓰면 된다. 없는 재료는 없는 대로 나만의 글을 완성하면 된다.      




 ‘이게 육아 에세이야? 라는 질문에 나도 “퓨전”이라고 답해야지.’     

엄마는 엄마만의 삼계탕을 완성했다. 나도 나만의 육아 이야기를 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너 진짜 못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