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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Mar 23. 2020

 "너 진짜 못생겼다."


 21살 때 내 첫 직장은 휴대폰 매장이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니 매대 안쪽 의자에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마침 옆에 다른 의자가 있길래 일단 거기에 앉았다. 휴대폰 판매 경력이 오래된 새로운 직원이라고 사모가 소개해주었다. 나는 그때 판매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던, 막 초보 딱지를 뗐을 무렵이라 새로운 직원 같은 것에 크게 흥미는 없었다. 잠시 고개를 까딱하고는 매대로 가서 정책지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으며 ‘손님이 오면 오늘은 이걸 밀어볼까.’ 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작업을 끝내고 나서야 그의 쪽을 보았다. 뒤통수를 보고 바로 거두려 했던 시선이 그가 켜놓은 컴퓨터 화면에서 멈췄다. 개통 프로그램 대신 파진 옷을 입은 여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7페이지, 8페이지, 9페이지 끝도 없이 다음 페이지를 누르느라 바빠 보였다. ‘이상한 사람이네.’ 생각하면서 뒤쪽에 액정필름을 가지러 갔다. 액정이 꽂힌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을 한참 돌리다가 결국 원하는 기종의 액정필름을 손에 챙겼다. 그사이 앉아있던 그가 언제 자리에서 일어난 것인지 내 눈앞에 있었다. 30초 정도 나를 빤히 보더니 

 “너 진짜 못생겼다. 이상하게 생겼어.”

라고 나지막이 말하고 쓱 지나가 버렸다.     

 그때 처음으로 못생겼다는 소리를 직접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옆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았다. 어중간한 파마머리, 청치마 차림의 나를 보면서 ‘오늘 화장이 잘못된 건가? 머리가 이상한가?’ 생각하면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퇴근할 시간이 되니 그가 갑자기 같은 방향이라고 태워준다고 했다. 집 근처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 봅시다.”하고 말했고 나는 “내일 봐요.”하고 웃으면서 내렸다. 그리고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다른 가게로 간 건지 아예 일을 그만둔 건지 알 새도 없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     

 몇 년 뒤 단짝 친구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의 원룸으로 모였다. 2층으로 올라가던 중 우편물 함에 있는 우편물을 집주인인 그녀가 챙겨서 올라오는 듯했다. 내가 맥주를 뜯고 있을 때 그 우편물을 뜯던 친구가 놀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니 얘 걔 아니야?"

선명한 3글자가 있었다. 여성스러운 남자 이름이라 흔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보는 순간 그때 나에게 못생겼다고 말한 그 남자의 얼굴이 선명히 기억났다. 친구는 그 당시 나와 같이 직원으로 일했었기에 그를 알고 있었다.

 “맞아. 얘 맞네. 헐 뭐야. 읽어봐.”

 “와 미쳤다. 얘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공공기관에서 보내온 그 우편물에는 우리 동네에 성폭행 전과범이 산다는 걸 알려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의 사진이 있었고 밑에는 ‘중학생을 강간하여…….’로 시작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것을 보고 난 뒤 우리는 그에 관해 얘기하며 사 온 맥주를 마셨다.     

 커피숍에서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기억을 더듬다 보니 10년 전이 떠올랐다. 생각을 그만두고 싶어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밖에 주차되어있는 차들은 오후 4시가 되자 햇빛 때문에 색이 옅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마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밖이 깜깜해지면 원래의 색보다 더 진해 보일 것이다. 내 모습 역시 그런 것 아닐까. 누군가의 평가 때문에 바뀌는 것은 없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생기자 그 사실을 좀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커피숍에 오기 전 남편이 켜놓은 뽀로로를 내가 매정하게 꺼버렸지만, 아이들은 조금 보채다가 금방 나에게 달려와 뽀뽀를 해주었다. 잘 갔다 오라는 말과 함께 현관 입구에서 남편과 아이들의 여섯 개의 손이 함께 흔들렸다. 모두가 나를 예뻐해 줄 수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이제야 내가 못생겼든 예쁘든 누군가가 나에게 무례하게 군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두 번의 출산을 거치며 확실히 건조해진 눈가는 조금만 웃어도 자글자글해지지만, 가족에게 넘치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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