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필영 Dec 27. 2020

5분 만에 호수가 바다로 변했다

 어제 입은 옷을 오늘도 입고 있다. 아이들이 옆에서 시끄럽게 뛰다가 이걸 달라 저걸 달라 말하지만 뭔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내 마음은 호수요’     




왜 갑자기 생각난 것인지 몰라도 진짜로 내 마음은 호수다. 아니 내 일상은 호수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면 4시면 데리고 오고 저녁에는 밥 먹고 씻기고 만화를 조금 보여준다. 늦게까지 자지 않는 아이들이 원하는 걸 좀 해주다가 밤에는 보통 같이 잠이 든다. 잔잔한 물속에서 맞이하는 일상은 신기할 정도로 매번 비슷하다.




 그 일상이 갑자기 지겨워져서 공원에 산책하러 갔다. 조금 걷다 보니 산책도 지겨워지는 게 아닌가.  쭈뻣쭈뻣 주위를 살피다가 팔을 올리고 흔들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30초도 안 되어 얼마 달리지 못할 거란 느낌이 왔다. 5분 동안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저기까지만 뛰고 그만두자, 너무 힘든데 이건. 햇빛이 너무 따가워. 휴대폰이 달랑거리네. 주머니에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어폰이 불편해. 무선 이어폰을 어디 놔뒀더라. 내일은 들고 와야지. 옆에 아줌마가 방금 나를 본 건가? 모자도 쓰고 나올걸. F94 마스크 진짜 숨 막힌다. 와 진짜 저기까지만 뛰자. 저기 지나고 나면 오르막이야.’     




 단 5분 만에 마음속은 잔잔한 호수에서 바다가 되었다. 파도가 휘몰아쳤다. 결국, 멈춰 섰다. 달리기를 멈추고는 바로 빨리 걷기로 페이스를 이어 가려했지만, 다리가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헉헉 숨소리를 요란하게 내뱉으면서 천천히 걸었다. 입에서는 피 맛이 났고 머리가 띵했다. 숨을 고르며 오르막길은 천천히 걸었다. 그래도 내가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걸어서인지 허리가 제법 꼿꼿하게 펴졌다. 그 자세로 몇 분 걸으니 희미하게 예전의 내가 보였다.     





그동안 연속되는 출산과 육아로 인해 아이들 분유를 먹일 때, 그리고 안아줄 때 아기 띠 할 때 모두 자세가 구부정하고 앞으로 쏠린 자세를 많이 하다 보니 이젠 아이들에게 그럴 일도 없는데도 정신 차려보면 배에 힘을 빼고 앞으로 축 늘어진 자세를 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나무가 많은 그 길을 예전의 나처럼 걷다 보니 반가웠다.     


‘내가 아직 존재하는구나. 꼿꼿한 허리에 숨어있었구나.’     






 옆으로 새가 날아갔다. 쟤들은 아마 날기 위해 심장이 튼튼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지만 나는 달리기 위해서는 심장이 튼튼해야 한다. 심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휘몰아치는 파도가 필요하다. 호수 입장에서도 (파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이 반갑지 않을까. 내일도 한번 달려봐야지.


작가의 이전글 손톱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