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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Dec 19. 2020

손톱에게


 모처럼 자유시간이 길었다. 혼자서 공원을 산책하고 아무도 없는 친정에 가서 일기를 쓰고, 밥을 먹었다. 오후에는 매거진에 낼 글을 몇 시간에 걸쳐서 써서 보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요즘 관심 가는 유튜브 강의를 몇 개 듣고 책도 읽었다.  8시쯤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는 남편과 교대를 했다. 아이들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침대에서 이불 싸움을 했다. 이불 싸움은 애들 둘이서 하지만 결국 지쳐 쓰러져 잠드는 것은 항상 내 쪽이다. 그런데 오늘 웬일로 아이들이 먼저 잠이 들었다. 진짜 자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살금살금 거실로 나왔다.




12시 반, 요즘 이 시간에 깨어있는 게 오랜만이다. 식탁에 앉아 또 일기를 썼다. 뭔가를 쓰는 것 중 일기가 제일 부담이 없다. 아무튼, 다 쓰고 보니 오늘 총 쓴 일기가 네 바닥이었다. 많이도 썼다.  그러다가 새벽 두 시쯤 나도 하품이 드디어 나왔다. 애들이 자고 는 안방에 문을 열었더니 어디선가 똥 냄새가 덮쳐왔다.

 

‘왜 방 안 가득 똥 냄새…. 분명히 오늘 청소를…….’


혹시나 해 둘째의 기저귀를 봤더니 자면서 개똥같이 생긴 똥을 싸놓았다. 엉덩이를 씻기는 내내 애는 얼마나 피곤했던지 눈을 감은 채 졸고 있었다. 뒤처리를 모두 하고 마지막으로 화장실로  손을 씻고 나서 보니 그제야 내 손톱이 보였다.


 ‘아니 어느새 이렇게 길었지?’


조용한 새벽 딸깍, 딸깍 손톱을 잘랐다. 발톱도 보니 너무 길어서 같이 잘랐다. 오늘 시간이 참 많았는데 새벽 두 시가 되어야 손톱이 보인다. 어느샌가 순위에서 밀려나 버렸다.     

 

“필영이는 발톱도 예쁘네.”

걸레질하다가 내 발을 마주한 전 남자 친구의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의 발을 보니 뒤꿈치가 다 갈라지고 엉망이다. 식빵 같았던 뒤꿈치는 어디로 간 걸까. 손과 발을 일상적으로 꼼꼼하게 챙길 때 그때는 언제일까.







 아이들은 좀 있으면 4살, 5살이 된다. 확실히 엉망진창 힘든 건 지났는데 아직도 정신없긴 마찬가지다. 얼마 전 산 거 같은 아이의 내복 바지는 어느 순간 9부가 되어있고 12월이 다 됐네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설거지는 어제 완벽히 비웠지만, 오늘 새롭게 가득 차 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확실히 정신 차려보면 쌓이고 가득 차고 금방 자란다.  매일 다 하지도 못하는 집안일과, 그러면서도 꼭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다 보면 하루, 한 달이 쑥쑥 지나가버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들이 둘 다 목욕을 스스로 하고 화장실에 혼자 가고, 뒤처리를 혼자 하면 나도 그 시간에 내 소중한 몸을 돌보는 시간으로 써야지.





 아이들 옆에 누웠다.


오늘 손톱에게는 다소 미안한 감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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