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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Jul 18. 2023

정리할 건 내 방만이 아니더라

“아윽 더러워”

 

최근 몇 주간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주말이면 촬영을 나가고 주중에는 편집한다. 최근에 여자친구와 이별하며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만남도 부쩍이나 늘어났다. 그리고 한 달 정도 뒤에 오픈할 전시도 준비하는 요즘이다. 신경 쓰지 못했던 게 하나 있다면 내 방.

 

한 사람이 무엇을 하기에 좁은 방은 아닌데 그간 신경을 쓰지 못해서 비좁게만 느껴진다. 책상은 또 왜 이리 어지러운 건지. 큼지막한 잡동사니 몇 개 있는 것보다 자잘한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치우기가 더 귀찮다. 촬영 때 필요한 드라이버와 메모리 카드. 다이어리를 꾸며보자 해서 산 예쁜 종이테이프. 아직 담아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는 필름 카메라까지. 물건을 들어 올리면 그 밑에 살짝 앉아있는 먼지들을 스윽하니 닦아낸다.

 

그렇게 청소가 시작됐다. 우선 큼지막한 것들 위주로 정리한다.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필요한 것들은 적절한 공간으로 옮긴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읽다 만 책들은 책꽂이에 차곡히 세워둔다. 이 사진은 뭐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무던하게 청소하는 나를 바라보는 과거의 나. ‘그만 쳐다봐’하는 마음으로 추억 상자에 당분간 감금시킨다. 먹지도 않는 영양제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한두 알 꺼내 먹고 대충 뜯어진 약상자에서 약을 꺼내고 박스들은 다 버려버린다. 마지막으로 물티슈로 먼지를 닦아내며 청소를 끝마쳤다.

 

깨끗해진 방바닥에 잠시 널브러져 있는다. 한여름이라고 바깥에서는 매미들이 맴맴거린다. 천장에는 형광등이 지긋이 나를 응시한다. 방 안에는 청소하면서 틀어놓았던 음악들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깔끔해진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좀 전에 더러웠던 책상과 대비를 이루면서 진작에 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렇게 깔끔해진 책상을 가만히, 그리고 가만히 바라본다.

 

최근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다 보니 나는 나를 돌아보는 일에도 소홀했구나 싶다.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과 비가 오면 우비 입고 돌아다니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나는 이제 일이 아니면 카메라를 잘 꺼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해야 했으니 후회는 없다만 뭔가 아쉬움이 생긴다.

 

생각해 보니 요즘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두통이 잦아졌다. 혈압을 재보니 평소보다 높은 수치로 측정되는 혈압.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일로 인한 압박감을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건강하지 못한 삶을 지속할 수 없었기에 나는 해결하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으니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잘 풀어야 했다. 어질러져 있던 방을 시간을 내어 청소한 것처럼 복잡한 머릿속 또한 청소하면 되겠지.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면 누군가 와서 내 머릿속을 깨끗이 청소해 주면 좋겠다. 내가 방을 청소한 것처럼.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틀어져 있던 음악을 잠시 멈추고 나갈 채비를 한다. 내게 무해한 것을 오롯이 나를 위해 해야만 했다. 인근 아이스크림 가게로 간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콘을 들어 올린다. 껍질을 벗긴다. 머리가 깨질듯한 시원함이 입안을 맴돈다.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꽤나 늦은 저녁 시간. 가로등이 켜져 있는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걷는다. 마치 내가 가야 할 길을 대신 정해 주듯 말이다. 가야 할 길을 정해주니 편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조금 있으면 비라도 내릴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산책길이 정말 나를 살게 해 주는 것만 같다. 혹시나 남들 돌아다니지 않는 야심한 밤에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는지 묻는다면

 

‘아, 아이스크림 하나 더 살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무해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왔다. 좀 전에 정돈된 방이 나를 맞아준다. 그 방을 보니 기분은 왜 더 좋아지는지. 아까와 같이 방바닥에 널브러진다. 그리고 천장을 본다. 깔끔히 정리된 방이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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