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나는 간혹 책을 읽기 위해 공원을 간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집에서 영상 편집을 하기보다 바깥에 나가서 책을 읽곤 한다. 오늘의 햇살도 나를 바깥으로 부르기에 충분했다. 햇살이 사라지기 전에 집 근처 자주 가는 공원에 들른다. 정자에 앉아 음악을 작게나마 틀어놓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찰나 한 아이가 농구공을 튀기며 내 쪽으로 달려온다. 히죽히죽. 저 멀리 있는 아빠로부터 최선을 다해 달아난 듯 기쁨에 겨워 온 힘을 다해 웃는다.
책을 읽는 것도 잠시 내 앞에서 웃고있는 아이를 슬쩍슬쩍 훔쳐본다. 혹시라도 어떤 액션에 아이가 놀랄 수도 있기에 정자 밑에서 몰래 피어난 잡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힘겨운 숨쉬기를 시작했다. 히죽히죽. 그 아이의 미소가 내게 전염이라도 된 듯 덩달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이곳에 왜 달려왔어?', '아빠랑 어떤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야?', 나 이곳에 있어도 될까?'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틀어막고 아이의 다음 행동을 무심히 지켜본다.
낯선 이와 함께 있는 게 걱정이 되셨는지 아빠가 뒤늦게 오셨다. 아이는 아직 아빠와 놀이 중인 상태이기에 잡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아이는 내가 앉아있는 정자 위로 뛰어 올라왔다. 아버지는 정자 밑에 계신다. 그 상태에서 나를 사이에 두고 두 부자의 옥신각신이 시작됐다. 나 잡아보라며 뛰는 아이. 연신 내게 죄송하다며 아이를 잡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아버지. 이 흥을 깨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책 읽는 척을 하는 나. 정자에서 세 사람의 보이지만 안 보이는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때마침 핸드폰에서 재생되는 다음 곡. 장기하와 얼굴들의 "우리 지금 만나"
결국 아이는 아버지께 잡혔다. 제가 아무리 도망간다 한들 아버지 손바닥 위 아니겠는가. 꺄르르하는 소리에 더 도망가지 못해 아쉽다는 듯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는 꼬마 아이. 적어도 15kg은 나가 보이는 아이. 아버지의 퀭한 눈빛이 그간 아이의 행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두 부자를 보며 마음속에 따뜻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아, 내게 결혼은 적어도 5년 내에는 없을 것 같은데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내가 아빠가 되어 가족이 생긴다면 꼭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아이의 성장 일기를 써주는 것이다. 태아 때의 모습부터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날.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하고 걸음마를 뗀 날. 친구와 싸운 날의 마음은 어떠했고, 꿈이란 건 처음 언제 생겼는지 까지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해 주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쓰다가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아이가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내 앞에 데려오겠지. 내 아이가 만약 딸이어서 사위 될 사람을 데려온다면 한동안은 꽤나 아니꼽게 보일 것 같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주인공 팀과 메리의 결혼식에서 팀의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다. "내세울 거 없는 저에게도 자랑할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제 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나도 언젠가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어떤 명예나 이제껏 성취한 것들로 나의 자랑을 고백하는 것보다 일평생 아름답게 가꾸어 온 가정이 나의 자랑이라 고백하는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내 인생의 커다란 목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 일을 한다.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이라는 모토도 책임감이라는 덕목을 배우기 위한 일종의 자기 훈련.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에 힘을 쓰고 있다. 내가 배운 사랑이란 내 안에서 넘쳐흐를 때에서야 비로소 흘러간다 생각하기 때문에. 내 경험상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은 본인을 꽤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면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싶다. 아니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싶다. 부모님의 말씀을 빌려보면 모든 준비가 돼서 부모가 된 건 아니라 한다. 너희와 지내다 보니 어느덧 부모가 되었다고 한다. 그 생각을 빌려 나는 미래의 내 아이에게 약간의 짐을 덜어내고자 한다.
'내가 너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테니 네 사랑을 내게도 조금 나눠주렴'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