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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에녹 May 29. 2023

좋은 아빠 성장일기

첫번째 이야기

나는 간혹 책을 읽기 위해 공원을 간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집에서 영상 편집을 하기보다 바깥에 나가서 책을 읽곤 한다. 오늘의 햇살도 나를 바깥으로 부르기에 충분했다. 햇살이 사라지기 전에 집 근처 자주 가는 공원에 들른다. 정자에 앉아 음악을 작게나마 틀어놓고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찰나 한 아이가 농구공을 튀기며 내 쪽으로 달려온다. 히죽히죽. 저 멀리 있는 아빠로부터 최선을 다해 달아난 듯 기쁨에 겨워 온 힘을 다해 웃는다.


책을 읽는 것도 잠시 내 앞에서 웃고있는 아이를 슬쩍슬쩍 훔쳐본다. 혹시라도 어떤 액션에 아이가 놀랄 수도 있기에 정자 밑에서 몰래 피어난 잡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힘겨운 숨쉬기를 시작했다. 히죽히죽. 그 아이의 미소가 내게 전염이라도 된 듯 덩달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이곳에 왜 달려왔어?', '아빠랑 어떤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야?', 나 이곳에 있어도 될까?'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틀어막고 아이의 다음 행동을 무심히 지켜본다.


낯선 이와 함께 있는 게 걱정이 되셨는지 아빠가 뒤늦게 오셨다. 아이는 아직 아빠와 놀이 중인 상태이기에 잡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아이는 내가 앉아있는 정자 위로 뛰어 올라왔다. 아버지는 정자 밑에 계신다. 그 상태에서 나를 사이에 두고 두 부자의 옥신각신이 시작됐다. 나 잡아보라며 뛰는 아이. 연신 내게 죄송하다며 아이를 잡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아버지. 이 흥을 깨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책 읽는 척을 하는 나. 정자에서 세 사람의 보이지만 안 보이는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때마침 핸드폰에서 재생되는 다음 곡. 장기하와 얼굴들의 "우리 지금 만나"


결국 아이는 아버지께 잡혔다. 제가 아무리 도망간다 한들 아버지 손바닥 위 아니겠는가. 꺄르르하는 소리에 더 도망가지 못해 아쉽다는 듯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는 꼬마 아이. 적어도 15kg은 나가 보이는 아이. 아버지의 퀭한 눈빛이 그간 아이의 행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두 부자를 보며 마음속에 따뜻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아, 내게 결혼은 적어도 5년 내에는 없을 것 같은데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내가 아빠가 되어 가족이 생긴다면 꼭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아이의 성장 일기를 써주는 것이다. 태아 때의 모습부터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날.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하고 걸음마를 뗀 날. 친구와 싸운 날의 마음은 어떠했고, 꿈이란 건 처음 언제 생겼는지 까지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해 주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쓰다가 아이와 내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아이가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내 앞에 데려오겠지. 내 아이가 만약 딸이어서 사위 될 사람을 데려온다면 한동안은 꽤나 아니꼽게 보일 것 같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주인공 팀과 메리의 결혼식에서 팀의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다. "내세울 거 없는 저에게도 자랑할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제 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나도 언젠가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어떤 명예나 이제껏 성취한 것들로 나의 자랑을 고백하는 것보다 일평생 아름답게 가꾸어 온 가정이 나의 자랑이라 고백하는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내 인생의 커다란 목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 일을 한다.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이라는 모토도 책임감이라는 덕목을 배우기 위한 일종의 자기 훈련.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에 힘을 쓰고 있다. 내가 배운 사랑이란 내 안에서 넘쳐흐를 때에서야 비로소 흘러간다 생각하기 때문에. 내 경험상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람은 본인을 꽤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면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싶다. 아니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싶다. 부모님의 말씀을 빌려보면 모든 준비가 돼서 부모가 된 건 아니라 한다. 너희와 지내다 보니 어느덧 부모가 되었다고 한다. 그 생각을 빌려 나는 미래의 내 아이에게 약간의 짐을 덜어내고자 한다.


'내가 너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테니 네 사랑을 내게도 조금 나눠주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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