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좋아해”
내 인생 첫 고백은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여러 짝사랑은 해봤지만 내 입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은 적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였다. 그간의 내 사랑은 정말 나 혼자만의 외사랑이었다. 안쓰럽게도 말이다.
이제 주민등록증을 받은 나도 어엿한 성인. 누군가 좋아하게 된다면 간드러진 고백으로 혼쭐을 내주리라. 하는 다짐은 내 안에 비밀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여성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마음을 키워가던 중 그녀는 유독 한 남성분과 대화를 참 잘했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면 웃음도 잘 짓는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참 부족했다. 그녀 앞에 서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꾸만 얼어갔기에.
그래서 나는 내 시선을 그 남성에게로 돌렸다. 어떻게 하면 나도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도 그녀를 웃게 할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그녀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남성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리더쉽 있는 사람. 뭐든지 솔선수범 나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줄 아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 유머러스한 사람. 개인적으로 나는 그 사람이 하나도 재미없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와 대화하는 걸 즐겼다. 세 번째,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말 그대로 여유가 있었다. 대화에 정적이 흘러도 억지로 말을 꺼내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분석이 다 끝났으니 이제 내게 적용할 차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뭐든 열심히 했다. 괜히 나서서 대화 흐름의 중심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진지한 얘기보다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더 좋아했다. 다소 진지한 나는 그녀와 대화할 기회가 생기기라도 하면 진지함을 없애곤 했다.
이런 간절함이 통했을까. 나는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약간의 고심 끝에 받아주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다르다는 것. 그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내 첫 연애는 끝이 났다. 허무하게. 한동안 충격 받은 마음을 흘려보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웃기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랬나. 아니면 리더십이 없어 보였나. 별의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차분히 돌이켜보니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나는 그 누구도 아니였구나”
그 사람이 좋아할 법한 사람으로 자꾸만 나를 변화 시키려고만 했다. 그 모습이 나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녀가 이런 사람을 원한다고 스스로 오해하고 나는 그 오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찌 보면 정말 나다운 모습으로 그녀를 대한 건 아니었으니. 그녀는 아무 잘못이 없던 것이다. 내 진짜 모습은 그녀가 생각했던 모습과 달랐으니 말이다.
타인이 되고 싶은 버릇은 사랑하는 무언가를 갖고 싶을 때 나오는 모습과도 같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부족한 나로서는 도저히 가질 수 없으니 껍데기라도 바꿔서 얻겠다는 노력. 정말 바뀌어야 하는 건 껍데기가 아닌데 말이다.
그 이후로 누군가 부러워서 그 사람 같아지고 싶을 때 나는 이때를 생각한다. 내가 구태여 저 사람처럼 행동하며 산다 할지라도 내 것이 아닌 게 저절로 얻어지는 건 아니라고. 그러니 화려한 껍데기를 가질 바에야 작고 단단한 알맹이를 가져야겠다고. 나 스스로 다짐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