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심해졌다. 깜빡이는 게 버릇처럼 하루에 한 번은 깜빡한다. 뭔가를 검색하려고 핸드폰을 켰는데 핸드폰 켠 순간 무엇을 하려 했는지 까먹는다. 머리에 스위치라도 생긴 듯 딸깍하는 순간 기억에서 사라진다. 청년 치매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설마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도파민과 연관되어있다한다. 짧고 강렬한 컨텐츠에 익숙해지면 머리는 순간적으로 도파민을 내뿜는다. 이것에 반복되다 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무료한 것들을 잘 견뎌내지 못하고 뇌는 자꾸 도파민을 찾으라 명령한다.
그렇게 도파민 분비에 장애가 생기면 성인 ADHD가 발생한다. 그 성인 ADHD의 증상 중 하나가 내가 요즘 걱정하는 건망증이라는 것. 짧은 숏폼과 릴스에 중독되는 것만으로 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니 작은 문제로 치부할 수 없었다. 나는 어쩌면 성인 ADHD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일 수 있겠다. 어쩐지 친구들과 대화할 때 겉은 잘 듣는 척을 하면서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가득한 게 이런 이유였나. 너 얘기 잘 듣고 있지라는 질문을 요새 꽤 많이 듣는다.
최근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식겁했던 일이 있었다. 결혼 본식 촬영을 가기 위해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카메라 장비들도 함께 들고 다니는지라 캐리어와 백팩 그리고 삼각대 두 대를 들고 탔었다. 지하철 좌석 위에 보면 선반이 있다. 캐리어와 백펙은 내 발밑에 내려두고 삼각대는 그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핸드폰을 하면서 삼십여 분을 가던 중 내려야 할 역에 내렸다. 캐리어와 백팩만 들고 말이다.
치이익. 지하철 문이 닫히는 소리에 내 손이 허전함을 느꼈다. 순간 세상이 멈춘 듯 온몸이 고요해졌다. 그러고 삼초 정도가 지났을까 멀어져가는 지하철을 바라본다.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뼈 마디마디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돋는 기분. 삼각대가 없으면 카메라를 거치할 수가 없어서 웨딩촬영을 할 수가 없다. 이제껏 수년간 아무 사고 없이 촬영을 해왔던 나는 누군가의 결혼식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내 심장은 두려운 떨림으로 요동쳤다.
삼각대를 구해야 했다. 지하철을 내 달리기 실력으로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니 머리를 굴려야 했다. 웨딩홀에 여분 삼각대가 있는지 물어봐야 할까. 웨딩홀 근처에 아는 감독님이 혹시나 촬영 나오진 않으셨을까. 그중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은 렌탈샵에 문의하는 것이었다.
급하게 렌탈샵에 전화를한다. 다행히 렌탈샵 직원은 아직 나가지 않은 삼각대가 있다고 한다. 금액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든 낼 수 있다. 삼각대가 있다는 소식만으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히 렌탈샵은 웨딩홀에서 멀지 않은 곳. 최대한 빠르게 도착하여 삼각대를 받고 무사히 촬영을 마무리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어디에서 나오면 뒤를 확인하는 습관을 갖는다. 식당을 나오면 자리를 확인하고 택시를 타면 내리기 전 자리를 확인한다. 가장 많이 잃어버렸던 체크카드는 이 습관을 갖고 난 이후에 잃어버린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까먹는 일이 생기다 보니 약속이 생기면 무조건 캘린더에 기록한다. 기록 기록 기록 계속 기록. 나는 나보다 내 스마트폰을 더 신뢰한다. 내 뇌속 기억을 담당하는 일부를 스마트폰으로 변경했다. 누군가와 약속을 정할 때 이날 일정이 뭐가 있었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스마트폰을 열어 일정을 확인한다. 이렇게 점점 기억하는 기능이 조금씩 퇴화 되는 것일까. 언젠가 인간은 기억하는 기능을 잃어도 괜찮아지는 세상이 오진않을까하는 되도않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 퇴화된 인류가 되고 싶지 않다. 계속해서 기억력이 남아있는 사람이고싶다. 나의 물건뿐만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사소한 시간들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더욱 철저히 도파민에 절여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인터넷에 기억 잘하는 법을 검색해 본다. 한 영상이 뜬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다. 스마트폰은 역시 자주 보면 안되라고 한번더 다짐한다. 그런데 그 영상 밑으로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무한도전 영상을 마주한다. 썸네일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아는 영상인데. 수십번을 본 영상인데. 누르면 안되는데. 악!
결국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