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 성적 만들기
우선 지원하려는 학교의 입학요강부터 살펴봐야 한다.
예일과 하버드는 IBT 100점이 최소 요건이었다. 특히 하버드는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영역에서 각각 25점 이상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시카고 로스쿨도 내가 가고 싶어하던 학교였는데 여기는 최소 점수가 104점이었다. 컬럼비아는 합계 점수 105점 이상에 읽기 및 듣기 영역 각 26점 이상, 쓰기와 말하기는 각 24점 이상; NYU의 경우 합계 점수 100점 이상, 읽기와 듣기는 각 26점 이상, 쓰기와 말하기는 각 22점 이상이 요건이다. (이상 2021년 입학자 기준)
대충 생각하기로 110점 이상이면 고득점이라고들 하고, 각 학교들의 토플 최저요건을 보니 110점 이상을 받으면 괜찮을 것 같고, 노력하면 그 점수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목표는 110점 이상으로 잡았다. (원래 예상은 한 115점 받는 거였는데 나중엔 110점에서 더 이상 안올라서 110점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 같은 토플 초심자에게는 단어 외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읽기와 듣기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초록색 보카책 (vocabulary)을 출퇴근할 때마다 외웠는데, 가끔 여의치 않을 때는 mp3 녹음파일을 들었다.
저 책도 들고다니면서 외우기엔 좀 무거워서 아예 복사해서 몇 장 단위로 들고 다니면서 외웠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편도 1시간인데 운동 삼아 걸어서 출퇴근 하면서 그 복사물을 들고 1시간 동안 소리내어 외웠다. 밤에 집에 갈 때는 어두워서 글자가 안보여서, 휴대폰 후레시로 비춰가며 외웠다. 밤에 막 큰 소리로 혼자 외우면서 걷다보면 왠지 쾌감도 있고, 왠지 느낌 상 사람들도 나를 피하는 것 같아서 무섭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화장실 가는 10분 동안에는 저 책을 카메라로 찍어서 폰 사진을 보면서 외웠다.
저 책만 마구잡이로 외우기에는 너무 막막해서, 잘 안외워지는 단어가 있으면 Dictionary.com에서 그 단어를 찾아봤다. Dictionary.com에서 정말 도움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Equivocal (애매한, 모호한) 이라는 단어가 너무 안외워져서Dictionary.com에서 찾아보면, Equi(Equal) + Vocal(Voice) 라고 어원을 알려준다. '네 말도 맞고 쟤 말도 맞다'는 식으로 입장을 애매모호하게 취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보기엔 Dictionary.com 예문이 초록색 보카책 예문보다 더 좋다. 예문이 이해되니까 더 외우기가 쉬웠다. 출퇴근 때 나의 소지품은 백팩, 한 손에는 보카책 복사물, 한 손에는 휴대폰(Dictionary.com에서 찾아봐야 하니까. 밤에는 후레시도 비춰야 하고.)이었다. 초록 보카와 Dictionary.com 진짜 추천한다.
학원 스터디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열심히 안외웠을 것 같다. 매주 만나서 단어 시험을 보는데, 이 녀석들이 어찌나 단어를 잘 외우는지 내가 이길 수가 없었다. 다들 대학생, 고등학교 졸업생, 대학원생들이라서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머리도 잘 돌아간다. 이들과 단어 시험을 보면서 어른들 말씀이 맞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거야."
쉬운 과목이 어디있겠느냐마는, 읽기와 듣기는 초반에 되게 어려웠다. 하지만 한국인 토종으로서 학원 버프를 가장 강력하게 받을 수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학원이 전문가는 전문가인 게, 답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인 실력은 있어야겠지만, 그걸 시험 적합하게 발현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게 대단하다. (선생님들 진짜 대단하십니다...) 나도 학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쓰기는 개인적으로 학원 버프를 제일 많이 안받은 과목이다. 토플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려고 시험삼아 토플을 봤었는데, 거의 10년 넘게 영어를 안쓰던 상태에서 작문을 했는데도 28점이 나왔다. 나중에 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학원에서 가르쳐준 대로 썼는데 그 때에도 28점이 나왔다.
그냥 말이 되게 쓰고 내용 빈 곳 없고, 예시를 많이 들고 논리적으로만 쓰면 고득점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라이팅 부분에 관한 간증글도 되게 많다.
스피킹은 진짜 연습이 중요하다. 유학 준비하면서 토플을 총 4번 정도 봤는데, 그 중에 제대로 말하고 나온 시험은 한 번 뿐이었던 것 같다. 집중적으로 스피킹만 연습한 시기였다.
득점요인은 얼마나 끊임 없이 줄줄 말하느냐이다. 앞뒤 말이 서로 안맞아도 된다. "음.....(침묵)" 하는 것만 없으면 득점한다. "진짜 이렇게 말해도 돼??" 하는 내용으로 말해도 침묵만 없으면 된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 나이기준을 16세로 해도 되는가? 당신의 생각을 말해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실제로 기출문제임). 얼마나 연습이 필요한지 아시겠죠? 한국말로 대답하래도 당장 말이 안나와요.
학원에서 외우라면서 알려준 샘플 답안은 "내가 16세 때 운전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운전을 해서 나는 운전을 되게 잘한다. 나는 운전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스트레스 푸는 것은 중요하다. 건강하게 살아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분이 안좋다. 그러므로 운전면허는 16세부터 허용해야 한다."이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죠? 그럼에도 강사님은 이렇게 말해서 만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이팅에서 논리가 핵심이라면 스피킹에서는 철판이 핵심이다. 말이 안되어도 그냥 막 말해야 한다. 이걸 깨닫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깨닫기 전에는 학원에서 준 샘플 답안 무시하고, 나만의 논리적으로 완벽한 샘플 답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시간낭비이다. 깨닫고 나서는 출퇴근할 때나 회사에서 화장실 갈 때, 밥 먹으러 나갈 때, 막 중얼중얼 샘플 답안을 외웠다. 자신감도 생겼다, 그냥 외운 대로 쏼라쏼라 말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5-6개월 동안 주경야독한 결과 토플 성적표를 만들었다.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는 집중해서 일을 엄청 하고, 8시부터는 사무실에서 토플을 시작했다. 이때 주경야독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게 됐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3번째 본 시험에서 110점이 나왔고, 4번째 본 시험에서도 똑같이 110점이 나왔다. 원래는 한 115점 쯤 기대했었지만 이미 9월이 다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토플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성적표 발송도 해야 하고, 추천서도 부탁드려야 하고 내가 써서 드려야 하고, 자기소개서도 써야했다.
게다가 강사님과 상의했더니 105점에서 110점으로 올리는 것보다, 110점에서 1점 올리는 게 절벽 기어오르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셨다. 그 말씀 듣고 바로 포기했다.
이렇게 토플 점수를 만들고나니, 추천서라는 또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https://brunch.co.kr/@kr-uslawyer/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