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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종화 Feb 23. 2019

아베 일족

모리 오가이 소설집

 <아베 일족>의 저자 모리 오가이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처음 이 책을 읽고는 작품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감정의 파고가 거의 없는 건조한 문체가 이야기를 이끄는데 문장의 밀도가 높지 않다고 느꼈다. 주제를 생각해도 일본 전통과 서구식 근대 사이에서 속물로 타협했지, 높은 수준으로 둘 사이의 떨림이나 긴장을 표현했다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작가의 생애에 더 관심이 갔다. 독서모임에서 토론을 하고 다시 작가의 삶을 찾아본 후 어떤 맥락에서 그가 추앙받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모리 오가이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한학과 외국어를 익혔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너무 어려서 나이를 두 살이나 속이고도) 의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 육군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최신 의학과 위생 제도를 공부하란 명을 받고 독일에 유학했다. 그는 독일 유학을 통해서 문학과 예술, 그리고 근대적 자아에 눈뜨는데 이 과정이 자전적 이야기인 단편 <무희>에 잘 드러나 있다.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 독일에서 사귄 여인 엘리제가 그를 찾아 오지만 모리 집안의 반대로 독일로 돌아갔다. 이 경험이 <무희>의 바탕이 된다. 이후 그는 군의관으로 최고 지위인 군의총감에 오르고 작가, 번역가, 평론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렇듯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의사, 군인, 작가로 최고의 지위에 올랐으니 그의 삶에 영광만이 가득하다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생은 ‘체념’으로 가득했다.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가업을 잇고 출세하기 위해 의대로 진학했다. 유학 시절 사랑하던 독일 여인이 일본으로 따라 왔으나 역시 집안의 반대로 그녀를 보내야만 했다. 러일전쟁 때는 그가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 수만 명의 병사가 각기병으로 죽기도 했다. 집안이 정해준 여자와 결혼하지만 불행했고 결국 이혼을 했다. 이런 삶을 알고서야 그의 작품 속 인물이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 흔들린 모습을 인식할 수 있었다. 가족과 국가가 대변하는 전통 가치는 예술과 자유를 갈망하는 그의 정신과 끊임없이 대립했다. 모리 오가이는 갈등 사이에서 무너지는 대신 오히려 양쪽 모두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비롯한 많은 작가가 그를 신처럼 우러른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그의 대표작 <기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모리 오가이처럼 체념하고 좌절한다. 오타마는 순사와 강제로 결혼했으나 순사의 본처에게 수모를 당하고 자살까지 결심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돈이 많은 스에조의 첩이 된다. 그녀는 스에조가 멸시당하는 고리대금업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근대적 주체로 자각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녀는 의대생 오카다가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를 욕망한다. 그러나 오카다는 독일 유학을 떠나야 하기에 미인인 오타마를 눈여겨 볼 뿐,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여긴다. 오타마는 능동적으로 오카다를 유혹하려 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사소한 우연으로 인해 좌절된다. 오타마 뿐만 아니다. 스에조도, 스에조의 본처도, 오타마의 아버지도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포기하고 체념하며 산다. 


 모리 오가이는 <나의 입장>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의 마음가짐을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하면 좋을지 말하자면, resignation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나, (남들이)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물론 resignation의 상태라고 말하는 것은 무기력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나는 그다지 변명할 생각도 없습니다.”


 resignation을 영영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한다 : when someone calmly accepts a situation that cannot be changed, even though it is bad (longman 영영사전)


 어떤 상태가, 비록 나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오타마가 자신의 욕망에 눈을 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도 결국 변한 게 없었다. 모리 오가이도 그랬다. 그가 첫 부인과 이혼 후 어떤 여인을 첩으로 두었는데 그녀와도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타마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던 오카다는 독일 여인 엘리지와, 사랑하던 첩과 헤어져야 했던 저자의 분신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체념을 했기 때문에 세속적 출세와 문학적 성공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은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와 <파우스트>에서 피력한 근대적 ‘체념’과 이어진다. 모리 오가이는 <파우스트>를 번역하기도 했다.


 괴테의 작품에서 ‘체념’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자신을 전문화함으로써 분업화 되어가는 사회 내에서 자신을 유용한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 즉 전인적 교양을 포기하고 한 가지 기술을 익혀 공동체에 봉사하기로 ‘체념하는’ 자세인 것이다.” (<괴테, 토마스 만, 그리고 이청준>, 안삼환 지음) 빌헬름 마이스터는 오랜 시간 예술과 교양을 쌓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결심은 그가 경험하고 공부한 다른 영역을 포기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한 가지 전문영역에 전념하는 것은 곧 근대적 정신을 의미한다. 파우스트도 온갖 쾌락과 지식을 얻고도 종내는 눈이 멀어가며 간척사업에 몰두했다. 모리 오가이에게 있어 체념은 근대를 수용하는 형식이 아니었을까? 이제 막 근대로 접어든 메이지 시대 일본, 모든 영역에서 근대화가 이루어지지만 순식간에 모든 것이 변화할 수 없다. 사회가 바뀌는 데에는 시간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타협이 없으면 근대를 수용할 기회 자체가 없다. 이런 타협을 감내하는 태도가 모리 오가이의 resignation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무희>와 <기러기>가 이전과 달리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아베 일족>에서 아베가 할복한 후, 부당한 대접을 받은 유가족이 주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멸족당하는 과정도 어쩌면 ‘체념’과 관련이 있다. 일본의 무사도는 유독 벚꽃을 사랑한다. 가장 아름다울 때 꽃잎을 흩날리며 지는 벚꽃처럼, 무사 가문은 쉽게 목숨을 내던지고 대신 아름다움을 얻는다. 생명을 체념한 대신 삶의 미학이 완성된다. 미학은 폭력과 맞닿아 있다.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주군이 보낸 군대가 진압하기 전에 남자들이 죽인다. <무희>에서 남자는 체념할 뿐이지만, 여자는 미쳐서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체념이 낳은 근대는 주체가 아닌 대상에게 폭력이 된다. <기러기>에서 오카다는 욕망의 주체가 되려고 하지만 끈질기고 강한 전통은 대상에서 벗어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녀의 이후 삶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에 비해 체념하고 타협한 모리 오가이는 일과 문학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상류층이 수용한 근대는 그들에게 심리적 좌절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달콤한 과실을 독점했다. 지나간 과거를 자신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예술로 형상화했다. 모리 오가이는 영국 유학 생활 내내 우울했던 나쓰메 소세키와 달리 서구를 숭상했다. 자녀들의 이름도 서구식으로 지었다. 서구에 대한 열등감이 어떤 방식으로 일본의 발전을 이끌었는지 모리 오가이의 작품을 통해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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