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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Aug 14. 2021

강제 기상

이사하는 날

 드디어 내일이면 정든 시부모님 댁을 떠나서 새 집으로, 생애 처음으로 우리가 산 집으로 이사를 간다. 설렘도 좋지만, 나는 당장 이사하는 날 아침에 뭘 먹을지가 걱정됐다. 그래서 남편한테 전화해서 회사 근처에 괜찮은 빵집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남편은 제과 부문 명장이 운영하는 빵집이 있다고 했고, 나는 빛의 속도로 검색을 했다. 그런 후에 남편에게 그 빵집에서 제일 맛있다는 빵 몇 개를 사 오라고 했다. 

 이사하는 당일 나의 계획은 이랬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8시에 온다고 했으니 나는 6시 45분 즈음 눈을 떠서 15분 동안 잠에서 깬 후에 7시에 일어나서는 커피를 내리고 냉장고에서 빵을 꺼내서 먹을 것이며, 나는 이 계획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내가 아직 잠옷 차림으로 있던 7시 즈음 현관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그때까지도 나는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우리 집에 오신 것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분명 직원들이 온다고 한 시간은 8시였고, 7시에 일어난다면 1시간 동안 충분히 빵을 먹으며, 커피를 마실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그때까지도 잠에서 덜 깼고, 잠옷 차림이었다는 사실보다는 아침은 언제 어떻게 먹을 것인지가 가장 걱정됐다. 머릿속에는 온통 '커피와 빵'을 어떻게 어디에서 언제 먹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 옷을 주섬주섬 찾아서 입고, 컵을 다 싸기 전에 서둘러서 커피를 내리고, 냉장고에 있던 빵을 꺼내서 일단 3층으로 올라갔다. 이삿짐을 싸는 직원들 앞에서 아침을 먹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집에서 먹으면 뭔가 나도 짐짝이 돼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 댁에서 허겁지겁 빵을 먹고 커피를 입 안에 털어 넣은 나는 서둘러서 이사 준비가 한창인 2층 우리 집으로 내려갔다. 

 이삿짐을 옮기는 동안 나는 직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때론 그림자처럼 때론 매미처럼 벽에 붙어서 이동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이사 온 집에서 짐을 정리하는 중이지만, 뭔가 큰 일을 아무 탈 없이 해냈고, 이사하는 날에도 내 아침식사를 지켜냈다는 생각에 뭔가 뿌듯하고 내가 대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다음에 이사할 때는 이삿짐 직원들과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 30분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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