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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May 21. 2022

문장 부호의 중요성

된장 시켜 달라는 뎅 

나는 조금 융통성이 없는 편이고, 문맥보다는 문장 자체의 의미에 집착하곤 한다. 한 번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한테서 카톡이 왔다. 


-당신 지금 어디야? 

-왜? 

-그냥 궁금해서. 

-동대입구역. 이제 집에 가려고. 

-윤미 저녁 뭐 해주지? 

-글쎄. 윤미한테 물어봐. 

-생리에 치킨이 좋다고 치킨 해달래. 냉동실에 있는 닭 꺼내서 에프에 돌려줄까? 

-그러던가. 

-된장 시켜 달라는 뎅. 당신 언제 오는데? 

이 대목에서 나는 앞의 문맥은 싹둑 자르고 '된장 시켜달라는뎅'만 보고 혼자 다소 신선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날개는 나를 아주 멀고 먼 상상 속 문맥으로 인도해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된장을 시켜달라고 한 걸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닭을 먹겠다고 한 딸이 갑자기 된장을 주문해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도 딸이 먹겠다고 한 것이 정말 된장이라는 소스인지, 된장찌개라는 구체적인 음식인지가 궁금했던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는 동안에도 나는 과연 지금까지 딸을 키우면서 집으로 된장찌개를 시킨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여보, 웬 된장? 윤미가 먹겠다고 한 게 된장이에요, 아니면 된장찌개예요? 

-뭐? 당신 무슨 말하는 거야? 

-된장 시켜달라고 했잖아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지? '젠장, 닭 시켜달래'란 의미잖아. 

-그럼, 카톡 메신저를 보낼 때 최소한 된장 다음에 쉼표 정도는 찍어줘야죠! 

-뭐? 문맥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된장 시켜달라는뎅'과 '된장, 시켜달라는뎅'은 정말 다른데?????? 

-알았어. 다음부턴 문장 부호 빼먹지 않고 보낼게. 내가 큰 실수를 했네그려. 


#된장 #젠장 #문장부호 #쉼표 

#번역작가 #일상 #대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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