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드실래요?
나: 딸, 저녁 뭐 먹지?
딸: 짜장면 어때요?
나: 하긴 면 좋아하는 네가 며칠 참았으면 많이 참았지. ㅋ
내 칭찬을 들은 딸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내적 갈등을 이어가는지 알 턱이 없는 딸은 내심 오늘은 짜장면을 먹을 수 있겠다고 기대를 하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면을 며칠 굶은 터라 면 얘기에 귀가 솔깃했지만, 이런 감정 따위 숨기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듯, 혹은 그냥 순순히 짜장면을 끓여주면 재미없지 않냐는 심보로 딸에게 말했다.
나: 난 그냥 네가 며칠 잘 참았다고 칭찬한 거야. 딱 칭찬만 한 거라고. ㅋㅋㅋ
딸: 아~~~~~~ 그러는 게 어딨어요?
나: 그렇지? 짜장면 먹자 ㅋㅋㅋ
사실 이때부터 난 속으로 나도 먹을까? 말까? 아… 지금 속이 살짝 꿀렁꿀렁한데, 괜찮을까? 아직 6시도 안 됐으니까 괜찮겠지? 짜장면 끓일 물을 부러 오랫동안 받는 동안 먹으면 안 된다는 내 이성과 먹고 나서 소화시킬 테니 어서 면을 넣어달라는 식욕의 탈을 쓴 본능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이성이 본능을 뛰어넘지만, ‘면’이라는 강력한 아이템 앞에서 본능은 이성이 자꾸 그런 식으로 말리려고 들면 가만두지 않겠으며, 기어이 먹고 말겠다는 본능 앞에서 종종 무릎을 꿇곤 했다. 하지만, 나는 깔끔하게 백기를 드는 대신, 그래도 끝까지 본능과 맞서 싸웠다는 변명이라도 하려고 이성을 시켜서 면을 끓는 물속에 집어넣는 그 최후의 순간까지 본능과 지저분한 기싸움을 하게했고, 결국 이성은 면과 함께 끓는 물속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짜장면을 끓여서 상 위에 올려놓고 동맹을 맺은 이웃나라 백성들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는 사이좋게 짜장면을 나눠먹었다. 그러던 중 딸이 짜장면 속에 있던 파를 골라내며 자기가 먹던 그릇 한쪽 귀퉁이에 붙여놓는 모습을 포착했다.
나: 그건 언젠가는 먹겠다는 네 강한 의지냐?
딸: 아뇨, 그냥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요.
나: 헐.
짜장면을 먹던 딸이 나한테 질문한다.
딸: 엄마, 독립이 뭐예요?
나: 독립이 뭐긴 뭐야. 독립하는 거지.
딸: 그렇게 성의 없이 알려주실 거예요?
나: 뭘 더 어떻게 설명해줘?
딸: 엄마는 선생님 하면 안 될 거 같아요.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어떻게 이해를 해요?
나: 이 녀석이 ^^;;;;
지금쯤 내 내적 갈등의 결과물은 내 뱃속에서 위액과 열심히 사투를 벌일 것이다. 사실 내 갈등의 원인 중 하나는 최근에 1kg 정도 불어난 몸을 이참에 빼보자는 결심도 한 몫했지만, 내 본능은 내 이성에게 ‘어차피 너 운동할 거잖아. 그리고, 이제 겨우 6시밖에 안 됐어. 네가 해야 할 집안일도 남았고, 방 닦고, 설거지하다 보면 다이어트, 그거 일도 아니잖아.’라는 이성도 수긍할 만한 말을 속삭였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고작 짜장면 하나일 뿐이며, 앞으로 내가 살아갈 수많은 날들 중 이성이 이길 날은 얼마든지 많을 것이며, 늘 이성이 본능을 이기는 삶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리고, 사실 또 하나의 내적 갈등은 짜장면을 먹을까, 비빔면을 먹을까 하는 것이었다. 짜장면도 맛있지만, 다음에는 아무래도 비빔면을 먹어야겠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