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여섯 시에 나가 밤 열 시에 돌아온 김기사는
식탁 앞에 앉자마자 장탄식을 내뱉었다.
“한 달 전에 배달한 물건을 못 받았다는 연락이 왔네.”
“그럼 어떻게 해?”
“그 아파트 CCTV 보관 기간이 2주라 이미 확인도 못 하지.
그래도 고객이 좋게 말하길래 나도 좋게 말했어.”
다행이었다.
까칠한 김기사가 괜히 퉁명스럽게 대하지 않았나
속으로 조마조마했으니까.
이런 일은 자주 있다.
화내고 욕설을 퍼붓는 고객,
이미 받은 물건을 분실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럴 때마다 김기사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돌아온다.
그런 날이면 나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때로는 김기사보다 더 심하게 대신 욕을 해준다.
그럼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진다.
물론 이런 얘길 듣는 게 지치고 싫을 때도 있다.
나도 하루 종일 내 몫의 일을 하고,
누구의 위로도 받지 못한 채 저녁을 맞을 때가 많으니까.
그래도 십오 년을 택배기사의 아내로 살다 보니
이제는 조금 알겠다.
세상에는 각자의 대나무숲이 필요하다는 걸.
김기사의 대나무숲은 나고,
나의 대나무숲은 글이다.
오늘도 식탁 앞에서 한숨이 흘러나오면
나는 조용히 그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
누군가의 하루를 위로하는 또 하나의 문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