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실력과 플라시보 사이

딸의 식탁 앞에서 내려놓는 것들

by 랑이네 글밥집

시장에 섬초와 봄동이 나왔다. 제철이다.
흙 묻은 잎을 장바구니에서 꺼낸다.

물에 씻고 다듬는다.
딸의 밥상에 올릴 찬을 만든다.

섬초는 생잎 그대로 들기름과 된장을 넣고 손으로 무친다.
잎의 결이 살아 있다.

봄동은 겉절이로 한다.
양념을 치고 가볍게 버무린다.


딸이 젓가락을 든다.
한입 먹고 말한다.

“엄마 겉절이랑 다른데? 개 맛있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얼마 전에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아기맹수 셰프 레시피야.”

사실은 내 멋대로 했다.
계량도 없고 레시피도 안 봤다.
그냥 늘 하던 것처럼 손 가는 대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레시피라 하면 시큰둥하던 아이가
셰프 이름이 붙자 속도를 낸다.
밥그릇이 비워진다.

이건 요리 실력일까.
아니면 이름의 힘일까.

입 짧은 아이에게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
나는 방송을 빌리고, 셰프를 빌리고,
내 레시피를 잠시 뒤로 둔다.

딸은 이 어미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저 셰프의 비법인 줄 알고 배를 채운다.


부모의 자존심은
자식의 빈 그릇 앞에서 힘을 잃는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접시는 비워졌다.

맛의 근원이 어디에 있든
아이의 배가 채워졌다면
그걸로 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