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적인 “F”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렵다고도 한다. 이 시대는 MBTI로 인간을 규정하려고 한다.
트렌드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이번에도 대충 흘려들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F”라고 하고, 이유까지 듣다 보면 그런가 싶기도 하다. 사람을 중시하며,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계지향형”이라고 한다.
누군가와 관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있듯이 시각적 요소에서 시작할까? 그래도 “말”을 건네보고, 섞어봐야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비로소 어떤 관계라는 것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갈까? 내가 하는 말, 이야기들은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할까?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라고 안나(쿠팡플레이, 2022년 6월)는 말한다.
외롭고 불안하며, 다가올 미래가 두렵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나와 내 깊은 내면의 나는 다르고 거기에서 오는 괴리가 때때로 나를 괴롭힌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들, 오래되고 켜켜이 묻혀있는 말하기 힘든 일들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으려니 짐작하나, 마냥 평온해 보이는 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더 나의 고립감은 커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성격인 “F“이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정작 나의 고민은 털어놓기 힘들다고 말한다면 너는 들어줄 수 있을까?
- 작가 : 셀레스트 응(Celeste Ng),
198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으며, 이 작품으로 출간과 동시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 출판연도 : 2014년
이 책은 메리의 북 클럽에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미국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며, 가족 구성원 각각의 복잡한 감정과 관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리디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Lydia is dead.
But, they don’t know this yet.)
중국계 아빠와 미국인 엄마는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난다. 공부를 잘하는 리디아는 가족의 자랑거리이며, 엄마의 기대감을 채워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한다.
어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아침, 리디아는 식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녀가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 수 없는 가족들은 그녀를 찾기 위해 그녀가 살아온 삶을 하나씩 추적해 간다. 그동안 가족이었음에도 서로 아무것도 소통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금발로 태어나지 못한 리디아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차가운 호숫가를 선택하고, 결국 그곳에서 발견된다.
한번 읽기 시작하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주제는 어찌 보면 뻔한 이민자 가족이야기 일 수 있으나, 작가가 서술하는 방식은 달랐다. 추리소설처럼 사건을 따라 가게 만들었으며, 끝이 궁금해서 결말을 먼저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들은 같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서로를 알게 되었다.
They had lived in the same house, but it had been years since any of them had really seen each other.
만약, 리디아가 의대로 진학하길 소원하고 있는 엄마에게 ”이젠 포기하고 싶어.“라고 말했으면, 마릴린은 받아주었을까? 아빠인 제임스가 ”사랑한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한다. “라고 했다면, 어느 날 호수에 같이 간 오빠에게 ”가끔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두려워 죽음을 생각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리디아는 아무도 모르게 차가운 새벽에 집을 나서진 않았을까?
가까우면서도 때로는 더 먼 타인처럼 느껴지는 가족, 가끔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아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받아주길 기대한다. 가깝다는 이유로 말하지 않는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억지이다.
리디아가 극토록 고민했던 것들을 말했다면, 그녀 또한 다른 가족의 외로움이나 아픔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임스를 누르고 있는 이민자로서 살아내야 하는 가장의 무게, 중국계 미국인과 결혼함으로써 포기해야만 했던 마릴린의 못다 이룬 꿈들.
그리고 가족끼리 잘 말하지 않는 그 말 "사랑한다."라고 말했으면, 그들은 각자의 무거운 짐을 나누고 리디아는 살아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