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오만
가끔, 아니 때때로 남자는 내 인생에 없나 보다 싶지만 몇 가지 일에서는 꼭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그 몇 가지 일 중에 운전이 들어있다. 운전면허 시험을 세 번이나 보고 운전한 지가 10여 년이 넘었는데 운전은 아직도 부담스럽다.
운전면허 시험을 세 번씩이나 본 이유는 떨어져서가 아니라 혼자서 생존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면 과장이 심할까?
맨 처음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는 캘리포니아, 세 번째는 인디애나에서 봤으며, 한국어와 영어로 된 필기와 실기시험을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패스” 했다.
시험과 실전은 언제나 같지 않다.
DC에서 운전은 뉴욕이나 LA처럼 복잡하지 않으나, 어디나 그렇듯 주차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겐 폴이 있기에 세 명의 여자는 관광명소에 내려주면 관람하고, 다시 차에 타는 패키지 여행처럼 돌아다녔다.
DC의 모뉴먼트부터 내셔널 갤러리까지 한 바퀴를 돌고, 레이건 대통령의 국장을 치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 워싱턴 국립 대성당으로 갔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의 건축물은 웅장하고 장엄했으며, 높은 천장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석조 조각들 등으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유명 관광명소답게 관광객들이 있었으나,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많지는 않았으며, 기도하는 분들의 엄숙함과 경건함이 여행자들의 들뜨고 왁자지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압도함에 따라 저절로 목소리가 낮춰지고 엄숙해졌다.
성당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예배당과 소회의실처럼 보이는 방들이 있었다. 멀리서 린다가 들어가는 방을 따라 들어가 보니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그녀가 기도하고 있었다. 방해가 될까 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바라만 보고 있었더니, 메리가 들어왔다. 아마도 저 사진(표지)은 메리가 찍었지 싶다.
린다가 다니는 교회에는 렘브란트의 그림이 있는 기도하는 방이 있었다. 유명한 성경구절(두 아들과 아버지)이 배경이며, 화가의 대표작이기도 한 “탕자의 귀향”이었다.
그림과 동시에 나에게 연상되는 것은 신부님이신 헨리 나우웬(Henri J.M. Nouwen)의 책 “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이다. 많이 힘들었을 때 알게 되었으며,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위로의 말 대신 이 책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신부님은 러시아의 에르미타시 박물관(Hermitage Museum)에서 그림을 우연히 마주하고, 본인의 삶을 반추하면서 책을 쓰셨다.
빛의 명암으로 인해 처음에는 두 사람, 아버지와 탕자로 돌아온 아들밖에 보이지 않다가, 차츰 그 옆에서 고통스럽게 그들을 바라보는 큰아들과 무심한 방관자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돌아온 아들의 뒷모습은 처절하게 피폐한 모습이나, 아버지는 그를 감싸 안으며 그의 귀향을 환영한다.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두 손은 마치 다른 사람의 손처럼 보인다.
오른손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손처럼 부드럽게, 왼손은 강한 아버지의 손처럼 굳건하게, 그것은 곧 그분 삶의 지향점이기도 했다.
장황한 그림의 설명은 아마도 폴과 린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시쳇말로 자기가 낳지 않았을뿐더러, 국적도 나와 다른 아이들을 키운 부모의 마음을 감히 내가 이해하고 글로 쓸 수있다고 하면, 그것은 오만일 것이다.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따뜻한 환대를 해준 린다와 폴에 대한 기억, 그리고 사진들이다.
집안에서 햇빛을 등에 지고 사진 속에 함께 웃고 있는 폴, 린다, 메리, 그리고 나, 모두 다 행복해 보인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 사진 같다.
가끔 메리를 통해 린다의 소식을 듣고 있다.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도 제시카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한다. 린다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통의 엄마들처럼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자식을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싶다가도,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최소한 평안하게 노후를 맞이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는 원망이 나오려고 한다.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나의 엄마, 메리 그리고 린다가 일상의 삶에서 평안하고 때때로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