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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 May 02. 2024

미국인 엄마와 한국인 아이들

린다 만나러 워싱턴 가자


메리의 친구들

누구나 서로 자주 만나고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확장되어 가는 거처럼 메리와 나도 그러했다.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도서관에서 만난 학생들, 가족, 친구로 점점 더 관계의 폭이 확대되고 내용은 깊어져 갔다.


메리는 시카고 대학에서 만난 대학 친구들,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 인연이 된 동료교사, 인디애나 대학에 공부하러 왔다가 나처럼 알게 된 한국인 친구들 이야기를 때때로 했었다.


그중에서 이름이 똑같은 시카고에 사는 메리, 에리카, 린다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다들 나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메리와 친구 하는 바람에 내 친구인 듯이 그분들의 이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넓디넓은 미국 땅에서 지역이 서로 다르다 보니, 얼굴 보고 차 한잔 마시기가 서로 간에는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메리가 전하는 친구들의 소식은 매일 또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아, 마치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생생했다.


한국인 아이들을 입양한 미국인 엄마, 린다

조심스럽게 전하는 린다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충격이 컸었다. 린다는 선생님 할 때 만난 친구이며, 현재는 워싱턴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웠다는 이야기에, 잘못 들었나 싶어 몇 번이나 메리에게 다시 물어봤다. 해외 입양에 관한 뉴스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가까이에서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어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한국에서 입양되었으며, 그 아이들은 미국에서 자라 성인이 되었기에 현재는 미국인이다. 린다를 만난 적도 없지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더욱이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린다가 겪었던  마음고생과 지금도 힘든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낯설기만 했을 이국 땅에서 그 아이들은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고 어른으로 성장해 갔을지, 그 긴 세월에 서러움과 차별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싶었다. 어머니가 된 린다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그들의 고통에 얼마나 또 가슴이 시리고 아펐을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져 말문이 막혀버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밖은 이미 깜깜한 밤이 되었다. 쓸쓸한 내 아파트에 가져가겠다며 메리를 졸라서 받은 자화상(표지 사진의 오른쪽)과 소품액자를 챙겨, 어두운 밤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자화상은 잘 그리지 못했다며 주기 싫어했으나, 집에 가져다 놓으니 한결 집안이 포근해졌으며 가끔 쳐다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린다 만나러 워싱턴 DC로

인디애나폴리스 공항 주차장, 2018년 4월 말 새벽


“워싱턴에 린다 보러 가자”는 메리의 제안에 순간 화들짝 놀랬지만,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그녀를 만나면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미국인이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생각이 만들어 낸 강한 동질감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도 설명하긴 힘들지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린다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디애나 시골 촌구석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여정은 서울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것보다 어찌 보면 더 복잡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에 블루밍턴에서 메리 집으로 가서, 메리 집 차고에 내 차를 주차해 놓고, 이번엔 그녀의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서 인디애나폴리스로 갔다. 거기에 하나 더해 공항주차장(사진 참조, E65)에서 셔틀버스를 타고서야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메리에 따르면, 워싱턴 공항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다시 전철을 타고 린다 집 근처에 내리면, 린다가 우리를 픽업하러 올 것이라고 한다. 미국인이 옆에 있는데, 그저 가만히 따라다니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며, 워싱턴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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